목련에 대하여

나도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지를 읽고 싶었지만 애석하게도 베르테르는 나에게 편지는 커녕 그림 옆서 한 장 보내주지 않았다. 독재자의 아내와 친하게 지낸 시인에게나 편지를 보내주는 베르테르라면 그딴 편지는 받고 싶지도 않다. 아니다. 거짓말이다. 받고 싶다.

목련을 목련이라고 말하기는 쉽다. 목련을 보고 그냥 목련이라고 말하면 된다. 제발 이 단계에서 멈추자. 이것은 스스로 하는 부탁이자 경고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면 안 된다. 더 나아가면 돌이킬 수 없다.

부탁을 거절하고 경고를 무시하겠다면 좋다. 후회하지 마라. 이것은 스스로 선택한 것이다. 더 말해 보겠다. 아니 계속해 보겠다. 앞의 문장은 최근에 읽은 황정은의 소설, 계속해보겠습니다를 연상시킨다. 이로써 우리는, 혹시 당신이 ‘우리’에 포함되어 기분 나쁘시다면 기꺼이 당신을 제외한 우리는, 연상을 자제하지 못하면 글이 산만해 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쨌든 계속해 보겠다.

목련에도 종류가 많다. 목련, 백목련, 자목련, 자주목련, 별목련, 분홍목련, 별분홍목련, 일본목련 따위가 있다. 지금 내 눈 앞에 목련 한 그루가 있다. 나는 저 목련을 어떤 목련이라고 불러야 하는지 모른다. 잎이 온전하게 하얀색이니 목련, 백목련, 별목련 중의 하나일 것이다.

몇 개 남지 않는 꽃잎의 수를 세어 본다. 여섯 개다. 원래부터 여섯 개의 꽃잎으로 핀 꽃인지 봄비에 봄바람에, 제길, 꽃잎이 떨어져 여섯 장만 남은 것인지 확인해야 한다. 이름을 제대로 불러주자면 확인할 게 많다. 나에게로 와 꽃이 되게 만들려면 확인할 게 많다.

나는 스마트폰 앨범에서 며칠 전에 목련이라고, 확실히, 죽어도, 정말, 무슨 일이 있어도 목련임에 틀림없다고 동정하며 찍은 사진을, 내 눈 앞의 목련꽃과 비교한다. 똑같다. 똑같을 것이다. 똑같은 것이라 생각하고 싶다. 백퍼 믿고 싶다. 나는 정말이지 백퍼라는 말만은 쓰고 싶지 않다. 나는 늙었다.

저 목련은 그냥 목련이다. 자목련도 아니고 백목련도 아니고 그냥 목련이다. 목련을 그냥 목련이라고 말하기는 쉽지만, 목련이 정말 무슨 목련인지 확인하고 목련이라고 말하는 것은 어렵다. 그나마 꽃이 피었기에 이거라도 할 수 있다. 꽃이 진 목련나무들은 무슨 수로 구별하나.

꽃이 진다. 꽃은 잊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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