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찮지만 커피를 내려 와, 책상 앞에 앉아, 아직도 자빠져 자고 있는 컴퓨터를 깨운다. 휴지통이 보인다. 며칠 전부터 비워야지, 비워야지, 하며 내버려둔 휴지통이다. 클릭한다. 열린다. 모니터 구석에 쪼그리고 있던 휴지통이 바탕화면에 대문짝만하게 열린다. 그래 니 세상이다, 이 놈아.
파일이 네 개 보인다. 쓸모 없는 놈들, 무용한 놈들, 쓰레기 같은 놈들, 내 비좁은 하드디스크를 좀먹는 좀같은 놈들, 죽일 놈들. 메뉴에서 ‘휴지통 비우기’를 누른다. 대화상자가 뜨며 내게 묻는다.
“휴지통에 있는 항목들을 영구적으로 지우겠습니까? 이 동작은 실행 취소할 수 없습니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쓰다, 역시 직접 내리는 게 아니었다, 멀쩡한 아내 놔두고, 내가 왜, 도대체 왜, 이 몸이 왜, 왜 때문에–이 말을 나도 꼭 써보고 싶었다–, 무엇 때문에, 무엇을 위하여, 몸소 커피를 내려야 한단 말인가, 전경련이 입금이라도 해준단 말인가,) 비우기를 실행하려다가 순간, 멈춘다. ‘영구적으로’라는 말 때문이다.
영구적인 삭제, 돌이킬 수 없는 동작, 영구적인 삭제, 돌이킬 수 없는 동작. 모종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클릭 한 번이면 죽는 세상이다.
다시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쓰다, 쓰다고, 쓰단 말이야, 나는 실행 취소할 수 없는 동작을 한다. 휴지통, 닫힌다. 책상 정리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