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모에게

넓은 책상을 좁게 쓰는 방법은 책상에 온갖 걸 다 늘어놓고 쓰는 것이다. 내가 그렇게 쓰고 있다. 그리하여 진부하게도 책상에 송곳 하나 꽂을 자리가 없다.

어찌해야 하는가. 간단하다. 책상 위에 있는 온갖 잡동사니를 싹 다 치우면 된다. 문제는 버릴 게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아, 있기는 있다. 바나나 껍질.

그러나 어림 한 티스푼 없는 소리다. 바나나 껍질 하나 치운다고 이 넓으나 비좁은, 그러니까 내 고매하고 더티한 인품 같은,  이 내 책상에 삼공 노트 누일 자리가 생기겠는가!

나는 어쩔 수 없는 세마이-호더(semi-hoarder)인 것이다. 책상을 책상으로 쓰지 아니하고 창고로 쓰고 있기 때문에 내가 대문호가 못 된 것이다.

돌이켜 보면 내 영혼의 책상은 늘 비좁았으며, 그 비좁은 책상에 이것, 저것, 그것이 다 있었다. 그리하여 나는 평생을 이거 하다가 저거 하고 저거 하다가 그거 하고 그거 하다가 디스 하고 디스 하다가 댓 하고 댓 하다가 썸싱하고 썸싱하다가 결과적으로 나씽하며 살았다.

사람도 그러해서 평생 노원을 만났다. 발치에 와 발라당 눕고 눕는 고양이 ‘모모’만 남았다. 이제 죽을 때가 다 돼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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