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밖에 오아시스가 와 있대.”
침대에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던 아내가 말했다.
나는 아내의 말이 뭔가 시적이라는 생각을 한다.
주문만 하면 다음날 아침에 문 밖에
오아시스가 득달같이 당도하는 사하라의 세계.
오아시스.
새로운 말을 만들 게 아니라 있는 말을 재활용하는 게 브랜드 네이밍이다. 카카오가 그렇고 멜론이 그렇고 당근이 그렇고 오아시스가 그렇다, 는 생각을 덧붙여 하는데 아내가 묻는다.
“김치찌개라도 끓여드려요?”
내가 반문한다.
“고기가 있어요?”
아내가 대답한다.
“돼지고기 샀지. 오아시스에서. 찌개용.”
도스토옙스키의 ‘지하로부터의 수기’에는 지하에 대한 묘사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