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패드를 식탁 한 쪽에 거치해 두고 저녁을 먹는다. 아내는 어디 갔고, 딸은 나가 살고, 원-아들은 알바 갔고, 투-아들은 군대 갔다. (쓰다 보니 원-아들은 퍼스트-아들, 투-아들은 세컨드-아들로 써야한다 싶지만 그게 뭐 대수냐 싶다.) 혼자 가는 먼 길, 인생이니 혼자 가는 먹는 저녁이 뭐 대수냐 싶다.
저녁을 먹다보니 반주라도 한잔 하고 싶은데 무슨 놈의 집구석에 소주 한 병이 없다. 원-아들이 얼마 전 일본 다녀오며 사다 준 위스키가 저기 있지만 생-냉동-해동-삼겹살과는 격이 맞지 않는다. 그냥 먹는다.
아이패드에서는 이상한 영화를 하고 있다. 심각한 주제를 코믹하게 보여준다. 웃기는데 웃기지 않는다. 딴 거 볼까 하다가 그냥 본다. 봐도 그만 못봐도 그만이니 흐름을 놓칠 염려도 없고 시작했으니 끝까지 봐야한다는 생각도 없다.
문득 아이패드 화면에 내 얼굴이 보인다. 젊은 날의 에센스라든가 에스프리라든가 하는 거는 다 휘발하고 없는, 빈 얼굴이다. 역시 소주가 있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