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장난감이다

영화 <토이스토리1>:
자신이 지구방위사령부 소속 우주전사라고 철썩 같이 믿고 있던 우리의 버즈는 어느 날 우연히 텔레비전을 보고 자신이 고작 장난감에 불과한 장난감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자신을 까마귀라고 알고 있었던 까마귀가 알고 보니 백조였어도 시원치 않을 마당에 이럴 수가! 차마 믿을 수도 없고 인정할 수도 없어서 버즈는 날개를 펴고 날아보기로 한다. 그는 2층 앤디의 방문 앞에서 저 앞에 보이는 창문을 향해 날개를 펴고 두 팔을 쭉 뻗어 주문을 외치며 날아오른다. 이렇게!
지상을 넘어 영원으로! To Infinite and Beyond!

ToyStory01.jpg

조금 전 저기 <화면>에 보이는 조그만 창문 밖 파란 하늘로 날개 달린 새 한 마리가 날아갔다. 그 새의 흔적이 아직 저기 남아 있다. 버즈가 우주전사라면 지상을 박차고 창문을 통해 밖으로 나가 방금 전에 날아간 새처럼 저 푸른 하늘로 날아오를 수 있을 것이고, 보잘 것 없는 장난감에 불과하다면 중력의 명을 받고 추락할 것이다. 결과는 예상대로 슬프다.






다.

그렇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추락하는 국보법도 날개가 있다.) 관객인 우리는 그의 몸짓이 사실은 무모한 투신에 불과 하다는 걸 이미 알고 있다. 세상에는 당사자만 모르는, 나머지 사람들은 다 아는 그런 진실이 있는 법이다. 객기 한 번 부린 대가로 그는 한쪽 팔이 뚝 떨어져 나가는 전치36주의 중상을 입는다. 자신이 장난감이라는 걸 알았으면 그냥 장난감으로 살았으면 좋았을 것을! 그걸 꼭 확인해야 직성이 풀리는 건 인간이나 장난감이나 마찬가지다. 예정된 수순대로 그는 절망한다. 절망한 자들이 그러하듯이 그는 또 예정된 수순대로 한동안 자포자기의 삶을 산다. 만화영화가 늘 그러하듯이 그는 또 예정된 수순대로 결국 자신의 정체성을 인정한다.

나는 장난감이다.

그러니 세상이여, 날 가지고 마음껏 장난쳐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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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Comments

  1. 이 시간에 또 음주댓글이라니요….
    그냥 왠 토이스토리 하다가…
    마지막에 슬며시 웃었다오…
    오늘 난 술자리에서…
    무덤(무덤까지 갖고갈)이야기를 들었소…
    내가 정녕 그걸 무덤까지 갖고 갈 수 있을지…
    또 어딘가에서 나불댈지….
    알 수 없지만…
    그에게 나는 하나의 무덤을 주었으니…
    일테면 맞보증이었다오….

    사랑하면 사랑하라…
    결국 그 무덤에게 내가 해준 말이오…
    사랑하면 사랑해야지…
    사랑하는데 사랑하지 않는 척 하지 말라고….
    사랑하지 않는 척 하다 보면….
    어느새 사랑은 흘러간다오…
    한강처럼 굽이굽이 바다로 간다오…
    가서 오지 않는다오…

  2. 사랑하면 사랑하라, 하니 정호승 시인 생각이 나는 구랴. 사랑하니까 사람이다,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 뭐 이런. (내가 이 댓글 쓰는데 옆에서 “에이, 중년의 남자들이 무슨 사랑타령이야. 그래서 중년들이 바람을 피나” 하는 구랴. 걸식님도 도매금에 중년 되어버렸소.)

    무덤까지 가져갈 스토리.라니. 흥미진진하오. 술 사겠소. 어여 털어 놓으시구랴. 우리 사이에 비밀은…

  3. *새로운 만남을 격려함*

    사람들은 끊임없이 어딘가로 흘러간다.
    쉴 새 없이 흔들려서 좌표를 확정지을 수 없는,
    막연한 공간 그 어디쯤 존재하면서 시간을 따라 서서히 이동해 간다.
    우연히 비슷한 좌표 위에 존재할 때,
    우리는 문득 서로를 인지하고 만날 수 있다.
    소통할 수 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변해가면서
    다시 헤어져야 할 시간이 오기 마련이다.
    우리는 그렇게 문득 만나져서 어느 시절만큼만 동행할 수 있을뿐.
    서로의 길은 누구 하나 꼭같은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애쓰지 말 것.
    우리는 변하지 않을 수도 머무를 수도 없다.
    몸부림칠수록 다치기만 할 뿐.
    혼자라는 사실을 담담히 받아들일 것.
    천천히 자신의 궤도를 따라 흘러갈 것.
    그리고…사랑할 것.
    문득 옆에 있는 그를 느꼈다면
    온 마음으로 환영할 것.

    너무 진지하게 생각하지 마시압.
    당신의 인생은 써보지도 못한 백지수표로 끝날 수도 있다.

  4. hermine님/ 님의 글을 읽으니 예전에 어디선가 “오고 가고 나그네 길이요. 그대와는 잠시 동행이 되고”라는 쓸쓸한 구절을 읽은 기억이 납니다. 제목도 시인의 이름도 잊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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