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금 나우가 전화를 걸어서는 울먹이며 말했다.

_아빠.
_어. 나우구나. 왜?
_있지. 기엽이가 기언이 국자로 세 대 때렸어.
_뭐? 아니. 왜?
_몰라. 그리고 나도 국자로 한 대 때렸어.
_알았어. 아빠가 지금 집에 갈게.
_응. 빨리 와.

무슨 일인지 몰라도 사단은 벌써 벌어졌나보다.
가서 자초지종을 듣고 혼낼 생각하니 우울하다.
끙.

p.s._______________________
세 피고인의 말을 들어보자.

나우: 응 내가 이렇게 팔하고 다리로 터널을 만들어가지고서 있는데 응 기언이가 지나가고 나서 응 기엽이도 밑으로 지나갈라고 해서 응 내가 못지나가게 했거든 그리고 나서 나는 방에 들어와서 몰라

기엽: 응 내가 소파 뒤에서 놀고 있는데 언이가 와서 내가 언이더러 쫍다고 말했는데 응 언이가 공룡으로 날 먼저 때려서 응 내가 국자로 응

나우: 그게 아니고 엽이가 나를 먼저 국자로 한대 때린 다음에 응

아빠: 너는 방에 들어가 있었다며.

나우: 응 내가 방에 들어간 거는 맞는데 으응 엽이가 내가 이렇게 만든 터널로 지나가서 내가 응 지나가지 말라고 그랬더니 응

아빠: 그 얘기는 조금 전에 했잖아. 그러니까 언이가 공룡으로 기엽이를 먼저 때렸어?

기엽: 응.

아빠: (언이에게)니가 엉아 먼저 공룡으로 때렸어? (언이 끄덕끄덕) 왜 때렸어?

기언: 응 언이가 엽이 공룡으로 때렸어.

아빠: 왜 때렸어?

기언: 응 공룡으로 때려쪄.

아빠: 어느 게 먼저야 언이가 공룡으로 엽이를 때린 게 먼저야? 아니면 엽이가 국자로 누나를 때린 거 먼저야? 아니면 엽이가 국자로 언이를 때린 게 먼저여?

나우: 나는 몰라. 나는 마루에 있고 엽이가 방에 들어가 있었는데 언이가 울어서 내가 가보니까.

아빠: 좀 전에는 니가 방에 있었다며?

[……]

이런 영양가 없는 취조를 한 30분간 하다가 포기하고
나란히 팔들고 서있기 벌 세운 다음에
니들이 같이 놀다가 같이 싸웠으니까 다 잘 못했어,
라고 말한 다음에 손바닥 한 대씩 때려주었다.
손들고 있을 때는 멀뚱멀뚱하더니만
한대씩 매를 맏더니 셋이 동시에 울음을 터뜨렸다.
뭘 잘 했다고 울어!
소리를 꽥 질러 주었다.

10분후 애들 손바닥은 멀쩡한가 살펴보았다.
멀쩡했다.

Posted in 애 셋.

0 Comments

  1. 다녀가신 것도 모르다가 오늘 우연히 흔적 발견…
    요즘의 의사소통 혹은 자기 표현의 방법을 좋다해야할지 나쁘다 해야할지…암튼…
    잘 지내시죠??
    아이들의 작품 보고 감탄, 감탄~~

  2. 하하. 아이들의 솜씨가 저렇다면 수준급이겠지만 거의 내 솜씨니 큰 일이지.
    “요즘의 의사소통 방법”이 어떤 방법을 말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나는 뭐 예전의 방법이든 요즘의 방법이든 워낙 불통에 속하는 부류의 인간이라 ‘소통’에 대해서는 할 말이 별로 없구 ‘불통’에 대해서라면 피를 토하면서 떠들 수도 있지.

  3. 사람들과의 관계로 치자면 저는
    거의 자폐 수준으로 서툴고,
    뒤로 물러서러는 무의식적 기운이
    나이값도 못하고 살아오게 만들었지요.
    이렇게 알기까지도 시간이 많이 걸렸으니 참 못말릴 노릇… 그래도 알았으니 다행…
    그렇다고 뭐가 크게 달라질까마는 언제든 열고 들어가고 올 수 있는 작은 통로(싸이,블로그)하나 열렸으니…

  4. 애덜 싸움은 어찌보면 그 자체로도 놀이…
    거기에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시면…
    아이들은 싸운 기억보다 아빠에게 억울하게 매맏고,
    벌선 기억만 남을거 같은데요.

  5. 적당히 싸우면 누가 뭐라나. 언이 등에 해리포터 이마에 있는 SCAR 같은 게 생겼으니 문제지. 엽이가 누나랑 동생 틈바구니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여. 누나가 꼬맹이는 어리다고 잘 데리고 놀면서 엽이는 크다고 막 대하고 그런다는군. 그럴 땐 나우하고 언이하고 기엽이를 따 시키는 셈이지…

    관계. 소통. 통로. 뭐 이런 말들은 어려서도 커서도 늙어서도 너무 어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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