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다 나았어요?

멀쩡한 정신도 아닌 주제에 이번에 기억상실증이란 병까지 얻어놓고도 여태 시 따위나 읽고 있는 몽달씨 꼴이 한심했다.
“이거, 또 시예요?”
“그래, 슬픈 시야. 아주 슬픈……”
몽달씨가 핼쑥한 얼굴을 쳐들며 행복하게 웃었다. 슬픈 시라고 해놓고선 웃다니. 나는 이맛살을 찡그리며 몽달씨 옆에 앉았다. 그리고 아주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이제 다 나았어요?”
“응. 시를 읽으면서 누워있었더니 금방 나았지.”

─ 양귀자, “원미동 시인”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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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요즘도 시를 읽으면 그래요.
    마음의 병이 잠시나마 치유되고 있다는
    그런 착각을 하게 되지요.
    일종의 마약인 건데,
    암은 여전히 몸에서 꿈틀거리는데,
    잠시 그 고통을 미봉책으로 덮어주는…

    그런데 불행한 것은
    여전히 흘러간 옛노래만
    그렇게 죽어라 읽는다는 거지요.
    갓 태어난, 따끈따끈 몰캉몰캉한 시가
    가끔은 보고 싶다는 거지요.
    그래서 꼭 대형서점 시집코너에서
    신작시집을 펼치곤 하지만,
    찾을 수 없지요. 하기는
    요즘 같은 시대에 누가 시를 쓰겠어요?
    누구의 가슴에서 좋은 시가 나오겠어요?

  2. 언젠가 말한 바 있(겠)지만 댓글을 보니 생각나 책을 뒤적여 보았소. 다음은 그 중에서 몇 구절

    “유럽에서 시는 죽었다. 문학은 죽지 않았지만 시는 죽었다. 한국에서는 죽지 않았지만 유럽에서는 죽었다.”

    “그러나 시의 죽음이라는 것은 메타포도 아니고 미래의 묘사도 아니다. 그것은 완료된 죽음이다. 적어도 유럽에서는 그렇다. 대중에게 읽히는 유럽의 생존 시인을 꼽는 데 양손이 다 필요할 것 같지는 않다.”

    “그러니까 그들은 시를 읽는다기 보다는 시를 공부한다. 학교 수업을 따라가기 위해서, 그리고 상급 학교에 진학하기 위해서. 그들이 공부하는 시를 쓴 시인들은 죽은 시인들이다. 살아 있는 사람들은 더 이상 시를 쓰지 않는다. 시인은 죽었다. 그러므로 시도 죽었다. 실제로 유럽 서점들의 시집 코너는 늘 한산하다.”

    “지하철 1호선 전동차 안에서 이런 시를 발견했다.

    그는 이 사막에서 너무 외로워
    이따금 뒤로 걸었다
    자기 앞에서 발자국을 보기 위해서

    이 한 연이 전부다. 제목도 없고 작가 이름도 없다. 이 시가 파리 지하철 공사가 공모한 시들 가운데 뽑힌 것이라는 사실만 밝히고 있을 뿐이다. 이 시는 정치적 사회적 인간과 구별되는 개체적 인간, 모래알 인간의 초상이다.”

    그러나

    “한국의 웬만한 가정에는 시집이 몇 권씩 반드시 갖추어져 있다. 무엇보다도, 살아 있는 시인들이 우리 사회에는 수두룩하다. 모르기는 몰라도, 우리 사회만큼 시인이 넘쳐나는 데도 드물것이다. 어떤 시집은 베스트셀러 자리를 소설과 경쟁하기도 하고 …… 비록 시인들에게 부를 가져다 주지는 못하지만, 웬만큼은 팔려나가는 곳이 우리 사회다.
    그러나 이런 ‘한국적 예외’가 오래 계속될 것인가? 나는 그다지 낙관적이지 않다.”

    이상 고종석의 “시의 운명”이라는 글이었소.

  3. ‘그는 이 사막에서 너무 외로워
    이따금 뒤로 걸었다
    자기 앞에서 발자국을 보기 위해서’
    — 이건 김제동이 들고 다니던 시집에서 본 기억이 있네요.
    그가 좋아하는 거라고 시집 배를 쫙 갈라서 펼쳐놓던 기억이.

  4. ‘그는 이 사막에서 너무 외로워
    이따금 뒤로 걸었다
    자기 앞에서 발자국을 보기 위해서’

    참으로 혼자놀기의 진수이며,
    초절정 고수의 내공이 느껴지는 군요

    어린왕자에 나오는 석양을 몇 번이나 본
    누구만큼이나(제대로 아는 게 없음 ㅜㅜ)

    아무튼 그렇게 걸어보고 싶은 요즘임다

  5. “어린왕자에 나오는 석양을 몇번이나 본 누구”가 바로 어린왕자요. 방금 책을 뒤져 찾았소. “어린왕자 챕터 씩스” 전문이요.

    ******
    오! 어린 왕자여, 나는 이렇게 조금씩 조금씩 너의 우울한 짧은 생활을 알게 되었다. 오랫동안 너는 낙조 때의 고요함 외에는 오락이라는 것을 갖지 못했다. 나는 그 새로운 사실을 네재 날 아침에 알았다. 그때 너는 말했다.
    “난 석양이 정말 좋아. 자, 해지는 걸 보러가요.”
    “기다려야지.”
    “뭘 기다려요?”
    “해가 지는 걸 기다려야지.”
    처음에는 너는 아주 놀란 듯한 표정을 했다. 그리고는 너 자신에 대해 깔깔댔다. 그리고 너는 나에게 말했다.
    “나는 아직도 우리 집에 있는 줄 알았어!”
    사실 그렇다. 미국이 정오일 때, 누구나 다 알다시피 프랑스에서는 해가 진다. 일 분 동안에 프랑스에 갈 수 있다면 당신은 해가 지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프랑스는 너무 멀다. 그러나 너의 그렇게 조그마한 별에서 너는 의자를 몇 발자국만 옮기면 되었다. 그러면 어린 왕자여, 너는 네가 원할 때마다 황혼을 바라볼 수 있었다…….
    “언젠가는 마흔 네 번이나 해지는 걸 봤죠.”
    그리고 조금 후에 너는 덧붙여 말했다.
    “당신은 아나요? 아주 서글퍼지면 해지는 게 보고 싶거든요…….”
    “마흔 네번을 본 날 그럼 너는 그토록이나 슬펐단 말이냐?”
    내가 물었으나 어린 왕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
    손구락에 쥐나는 줄 알았소이다.^^

  6. 그렇군요, 어린왕자가 44번 본
    로군요

    형님의 손구락에 난 쥐 덕분에
    이제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이
    드디어 하나 생겼습니다,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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