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노선에 대하여

나는 그곳을 떠나왔고 그곳을 잊었다. 이제 이곳에서는 아무도 그곳에 가지 않는다. 이곳에서 그곳에 가던 노선은 폐지되었다. 나는 이제 그곳을 모르고 그곳의 사람들을 잊었다. 쌀 배달하던 아버지 오토바이 사고로 죽은 쌀집 아들은 장가는 잘 갔는지 모르고 학교 갈 때마다 먼 발치에서 훔쳐보던 약국집 딸은 시집 잘 갔는지 모르고 내 친구의 시계를 훔쳤던 철물점 집 아들은 이제는 사람 좀 됐는지 모른다. 나 잊었다. 다 잊었다. 그러나 이렇게 살다가도 내 기어이 어느 날엔가 한번은 그곳에 가보기는 가봐야 겠으나 무얼 타야 그곳으로 가는지 나는 벌써 잊었다. 나 오래 전에 그곳을 떠나왔고 나 그곳을 모른다. 나 그곳에 갈 수가 없다. 이곳에서 그곳에 가던 노선은 어느 날 폐지되었고 대체 어딜 가야 그곳에 가는 버스가 있는지 나는 모른다. 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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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 대한 중독님의 골목에 대한 트랙빠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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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Comments

  1. 따위님의 글을 읽어내려 가자니, 지인 중 한 명이 생각합니다.
    그녀는 얼마 전 ‘밴처 밸리 계획’이 발표된 ‘가리봉동’에서 출생하여 성장한 여인으로서,
    외모는 다소 칙칙하나, 음색이 청아하여 ‘신이 내린 목소리’라는 애칭을 갖고 있었지요.
    그렇다보니, 주변에서 ‘성우가 되라’는 권유가 이어졌고,
    이러한 빈말을 진심으로 받아들인 그녀는, 막무가내로 모 방송국의 성우시험을 쳤더랬지요.
    ‘하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다’ 고.. 시험에 응시한 그녀는,
    자칭 ‘우수한 성적’으로 성우세계에 입문했습니다.
    그녀의 말투와 옷차림은 날이 갈수록 달려졌습니다.
    매일 마주치는 사람들이 연예인들이고, 방송쟁이들이다 보니,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 위해서는 ‘이미지 관리’가 필요했던게지요.
    짝사랑 하는 대상들도 소위 ‘잘나가는 남자’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주목할만한 소득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실연의 아픔은 이어졌고, 그때마다 온갖 객기와 술주정을 수습해야 했던 저로서는
    ‘저라도 그녀와 결혼해주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으니까요.
    어쨌거나, 그녀의 아픔을 멀리서 지켜보신 그녀의 부모님은,
    가리봉동에서 세탁소를 운영하시던 노하우를 이용하여 인맥을 총동원하고,
    급기야 반상회에서 그녀의 배필을 공개수배하고 나섰지요.
    결국 엄선하여 추려진 혼처는 연탄집 막내아들.
    허나 그녀는, 눈썹 하나 까닥하지 않았습니다.
    나름대로 성우인데..연탄집이 웬말이냐는 거였습니다.
    그 뒤로, 그녀의 방황은 거세게 치달았습니다. 부모님에 대한 배신감 때문이었지요.
    ‘개천에서 용 났다’고는 하나, 자신의 가치를 헤아려주지 않는 부모님들이 미웠던게지요.
    아무튼,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고.. 그녀와는 뜸한 관계가 유지됐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그녀로부터 전화 한통을 받았습니다.
    더없이 발랄한 목소리로 결혼을 한다더군요.
    그런데 상대에 대해 묻자, 그녀는 침묵으로 일관했습니다.
    사정이 있지..싶어, 당시는 그냥 넘겼더랬지요.
    나중에 알고보니, 그녀는 동네 골목에서 가벼운 접촉사고로 배우자를 만났다고 합니다.
    바로 그 남자가 연탄집 막내아들이었고,
    지금은 ‘제비표 페인트’에서 촉망받는 과장으로 승승장구 한다고 합니다.
    ‘인연’이란 이런 것인가 봅니다. ‘만나야 할 사람들은 결국 만나는 것’..
    게다가 요즘은, ‘밴처 밸리 계획’으로 ‘부동산 대박’을 꿈꾸고 있더군요.
    옛날, 그 호황을 이뤘던 연탄가게 자리가 바로 가리봉동에서 최고의 금싸라기 땅이라구요.
    하두 수선을 떨기에, 시끄럽기도 하고..그래서 서둘러 전화를 끊었습니다만..
    그녀는 행복해 보입니다. 무엇보다 부부싸움이 잘 안된다고 하더군요. 왜일까요..?
    유년시절.. 그 골목길의 정서를 같이 하고, ‘다방구 놀이’와 ‘얼음땡 놀이’를 같이 했던…
    그래서 이 ‘가리봉동 커플’의 부부싸움은 매번 가벼운 놀이로 끝이 나는 것이 아닐런지..

    ** 허접한 글에 정성껏 글을 달아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O^

  2. “** 허접한 글에 정성껏 글을 달아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O^”
    이 소리는 이제 제가 할 소리가 되었습니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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