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저녁, 어 쫌 춥네, 하며 버스 타러 가는데 웬 낯선 젊은 여자가 다가 오더니 나에게서 좋은 기운이 느껴진다고 했다. 내가 그렇지 뭐 워낙 생각이 올곧고 영혼은 또 백설이 만건곤할 적에 독야청청한 소나무처럼 형형하니 이 바디가 움직일 때마다 좋은 기운이 담배연기처럼 사방으로 뿜어져나올만도 하지, 하고 속으로 생각한 다음 물었다.

그래 무슨 일이슈? 딱 5분만 얘기하잔다. 나 바빠유, 했더니 그 옆에 서 있던 딴 여자가 거들며 가로되, 선생님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그 좋은 기운을 잘 다스려야 내년에는 선생님 가족의 운세도 피는 겁니다, 한다. 요즘은 이런 것도 버디로 하는가부다, 하고 또 속으로 생각한 다음, 난 운세 따위엔 도통 관심이 없수다, 그럼 추운데 계속 고생하슈, 난 가우, 하며 내 가던 길 가고자 했더니, 참나, 기가 막혀서, 내가 저희들을 좌청룡 우백호로 임명하기라도 한 것처럼 두 여자가 좌우에서 나를 끈길기게 따라붙는 거디었던 거디었다. 딱 5분만요, 5분만요, 하면서 계속 따라오는 거디었던 거디었다. 귀찮으니께 따라오지 마유, 해도 계속 따라오는 거디었던 거디었다. 삐끼도 그런 삐끼가 없었다. 아무래도 하나 건졌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번지수가 틀려도 한참 틀린 것두 모르고 말이다.

그래서 어떻게 됐냐구? 어떻게 되긴? 뭐 교양 없는 짓이기는 하지만 결국 내 입에서 낮게 욕이 나오고야 말았지. 이렇게. 이런 씨발! 효과 직빵이드만. 역시 욕이 최고여. 그 여자들의 허걱!한 표정들을 보여드려야 하는 건데. 욕해 놓구 사진찍자 할 수도 없구. 아까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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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Comments

  1. 이제 나이 먹을 만치 먹고
    세상 풍파 겪을 만치 겪었는데
    여전히 ‘그들’이 나를
    그 뻔하디 뻔한 사기짓에 넘어갈
    순진무구 얼빵청년으로 보아준다면,
    그걸 기뻐해야 하나? 슬퍼해야 하나?

    난 최근 저런 일이 없어서
    왠지 ‘아직도 내가 글케 순진해보이나?’
    속으로 무척 반가울 거 같은디…

  2. 글쎄. 그들도 지나가는 행인을 랜덤하게 골라잡지는 않을 거야. 인상이든 소지품이든 복색이든 뭐든 하여간 뭔가를 보고 나름대로 ‘물고기’를 고르긴 하겠지. 타겟 설정이 마케팅의 기본이니 말이야.

    내 생각에는 순진해 보이는 사람이 ‘물고기’로 선정되는 건 아닌거 같아. 외려, 뭐랄까 얼굴에 불만이나 괴로움이나 고뇌 뭐 이런 게 쓰여져 있달까, 하는 ‘병색이 완연한’ 사람을 고르는 거 같아.

    그렇지 않구서야 내가 타겟이 될리가 있겠어? 안경 썼지, 머리 길지, 가방 들었지, 카메라 들었지, 꾀죄죄 하지…

    언제 시간 많은 날 낚시질 해오면 재미삼아 맞대응해 줘야 겠어. 무슨 소리하는지 어디 들어 봐야지. 설마 납치해서 섬에다 팔아먹거나 하는 조직은 아니겠지.^^

  3. ㅎㅎㅎ 역시 따위님 글에는 유머가 넘칩니다. 전 남들이 만만하게 보이는지 학교갈때 그런사람들 꼭 하나씩 달라붙더군요. 요즘엔 그냥 대꾸도 안하고 미친사람 보듯이 쏘아봅니다 흐흐..

  4. ‘병색이 완연한’ 사람이었나 봅니다, 제가
    대학교 2학년 쯤인가요… 따라 갔었지요
    여자에 약했던 것인지, 순진했었는지, 암튼

    보통 주택가의 한 집으로 들어가더군요
    그 좋은 기운이 다 조상님들에게서 왔다더군요
    그래서 조상님들께 감사의 절을 올려야
    앞으로도 계속 그 기운이 승화된다 하더군요
    그래 그냥 절만 하면 되냐 했더니
    그래도 조상님들을 부르는 것인데
    조촐한 음식은 장만해야 하지 않느냐
    상차림은 저 안방에 우리가 해 놓았으니
    상차림비로 5만원(그당시 꽤 컸습니다)을
    주면 조상님들께 절을 올릴수 있다 하더군요

    저는 지금 비디오를 반납하고 오는 길이라
    지갑두 없고 돈도 없다 했더니
    인상이 구겨지더니(이걸 찍었어야 하는데)
    집에 전화해서 가져오라 할 수 없냐고 하더군요
    집에 아무도 없다고 하고 총총 도망쳐 나왔습니다

    그제야 문득 이순간 잡혀서 새우잡이 배나
    어디 섬으로 팔려가나 하는 걱정이 들었는데
    (참 빨리도 들죠 ^^)
    몰골이 ‘병색이 완연해서’인지 그냥 순순히
    보내주더군요…

    첨에 이쁜 삐끼는 보이지도 않고…이뻤는데
    아무튼 그랬던 기억이 되살아납니다

    따위님과 따위님의 블로그를 사랑하는 모든 분들
    새해 건강하시고 복 많이 많이 쟁취하시고
    계속 이 따위로 살아갑시다 ^^

  5. pinhole님, 바늘구멍 다 뚫으셨나요?^^
    이상하다. pinhole님은 사진보니’병색이 완연한’ 거 하구는 거리가 한참 멀게 생기셨는데도 저런 삐끼들이 달라 붙나요? 하긴, 경제가 불황이다 보니…

  6. 바다동상, ‘태능인’도 그런 몹쓸 일을 당하셨구랴. 동상은 특히 조심하시구랴. 섬에 팔아 넘기면 일 잘하게 생겨서 노리는 업자들이 많을 것이니.
    그리고 “계속 이 따위로 살아갑시다.” 이 말 이거 특정인은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은 아니지만, 씽글들이 들으면 버럭!할 말이니 사용에 조심해야할 듯.

  7. ㅋㅋㅋ. 저도 한 때, sea69과 똑같은 용기를 실천했었다는..
    젊은 혈기에 따라가서는(20대 초반이었던지라..)
    ‘이런 짓거리 다 집어치우고, 하나님 믿으라’고 전도까지 했었다는..
    (자랑 삼아, 교회친구들한테 얘기를 했더니
    ‘정신 못차린다’는 눈빛으로 무시를 치더라는..)
    아무튼, 하늘이 도와 목숨을 부지하고 탈출을 했습죠..
    다음날, 무모한 짓이었다는 걸 깨닫고는 얼마나 오금이 저리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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