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빨강

오르한 파묵(지음), 이난아(옮김), <<내 이름은 빨강 1, 2>> 민음사, 2004

(스포일러 있음)

모든 것이 정해진 세상에서는 고민할 것이 없다. 그저 정해진대로 따르기만하면 된다. 1591년 오스만투르크 제국이 그러했다.

원칙은 간단하다. 좋은 그림은 종교와 코란에 위배되지 않아야 한다. 세밀화가는 자신이 그린 그림에 자신의 서명을 할 수도 없으며 그림속에 자신만의 스타일을 드러내서도 안된다. “스타일이라는 것은 개인적인 흔적을 남기는 오류”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세밀화가들이여, 원칙을 따르라.

그러나 세상에는 하지 말라는 거 굳이 하는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다. 교묘한 방법으로 자신만의 서명을 몰래 넣은 이도 있었고 그림의 특정부분을 정해진 방식대로 그리지 아니하고 자신의 스타일로 그려서 그 그림이 자신의 작품임을 증거하는 화가도 있었다. 가령, 왼쪽에서 세번째 속눈섭의 방향을 정해진 대로 그리지 않는 식이다. (이 예는 내가 급조해 낸 것이다.)

뭐 좋다. 이해한다. 그럴 수 있다. 내가 그린 기린 그림이 네가 그린 기린 그림이 아니라는 뜻에서 내가 내 기린 그림에 서명을 하겠다는데 누가 뭐라겠는가.

아무튼 이렇게 그려진 그림들은 지배자 술탄의 것이 된다. 예나 지금이나 좋은 것은 권력자의 것이다. 세밀화가들은 국가관청인 ‘화원’에 소속되어있다. 공무원인 것이다.

그런데 베네치아에 가서 원근법으로 그려진 그림과 초상화를 보고 온 이가 있었다. 서양문물, 언제나 이게 문제다. 그는 자신이 보고온 대로 그림을 그리고자 했다. 아니 화원 소속의 세밀화가들에게 돈을 주고 자신이 원하는대로 그리게 했다. 간도 크다. 종교와 코란에 위배되는 짓을 하다니. 이런 일 혼자서는 못한다. 뒤를 봐주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누굴까?

“다르게 그리기 시작한다는 것은 세계를 다르게 보기 시작”하는 것이다. 가치관이 달라지고 세계관이 달라지는 것이다. 그러니 싸움이 일어날 밖에. 싸움이 치열해 지면 사람이 죽게 마련이다.

범인은 식물성이다.

p.s.
‘원근법’은 가까운 곳에 있는 물체는 크게 그리고 먼 곳에 있는 물체는 작게 그리는 것이다. 내가 이해하기 힘든 부분은이 원근법조차 발견된 것이란 사실이다. 내 눈에 그렇게 보이는 데, 그저 보이는 그대로 그리면기만 하면 되는 것인데 어떻게 그걸 모를 수가 있었을까.

Posted in 날림 독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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