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째 딸이라서 이름이 삼순이인
삼순이는 삼식이를 좋아한다
이름 한번 촌스러운 삼순이가 좋아하는
삼식이의 본명은 삼식이가 아니다
이름이야 어떠하건 간에
삼순이와 삼식이는
갑돌이와 갑순이처럼 잘 어울리는 한 쌍의 바퀴벌레들이다.
─ 나는 지금 ‘잘 어울리는 한쌍의 바퀴벌레들’이라고 말했다. 그래, 한때는 이런 표현이 유행했던 적도 있었다. 나도 어쩔 수 없이 그 시대 사람이다. 그 빌어먹을 시대. 그건 그렇고
내 본명의 가운데 자는 ‘충성 충’ 자다.
─ 기왕에 이런 이데올로기적인 글자를 자기 이름에 넣고 살아가야할 웃기는 운명이라면 차라리 무한 복종해야 하는 ‘충’자 보다는 무한 지배를 할 수 있는 ‘다스릴 치’ 자가 낫겠다는 생각을 한적이 있다. 하긴 나보다 더 촌스러운 이름을 가진 박충재도 있다. 그건 그렇고
‘충’ 자에는 모든 이름을 촌스럽게 만드는 강력한 ‘포스’가 있다. 못믿겠다면 지금 당장 자기 이름의 한 음절을 ‘충’ 자로 바꾸어 보라. 강력한 포스가 느껴질 것이다.
이름이야 어떠하건 간에
충순이와 충식이도 물론
갑돌이와 감순이처럼, 아니
삼순이와 삼식이처럼 잘 어울리는 한쌍의 바퀴벌레들일 것이다.
─ 이런 말까지 해서 구차하다만 내가 ‘것이다’라고 하는 이유는 사람들이 나를 충식이로 내 아내를 충순이로 부르는 것을 단호하게 거절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나를 충식이라고 부르는자, 지옥에나 가라. 그건 그렇고
그런데 삼순이가 충식이도 마음에 들어할까
삼순이는 삼식이를 좋아한다
충식이를 좋아해주는 사람은 충순이 밖에 없다
이름이야 어떠하건 간에
삼순이는 가끔 외롭다
그보다 더 촌스러운 이름을 가진 충식이의 외로움은
하늘을 찌를 정도다
이런 제길 왜
삼순이는 삼식이만 좋아할까
삼식이, 아침 먹고 점심 먹고 저녁 먹고
이렇게 하루 세번 먹는다고 삼식이가 된
삼식이가 뭐 볼 게 있다고
오, 내 사랑 삼순이. 끝.
어제 어느 고스톱 판에서
30대, 40대, 60대 남자들이 모여
똥이네 피네 살벌한 승부를 벌이고 있는데
티브이에서 삼순이가 나오더군.
그때 알았지.
30대에서 60대를 아우르는
대한민국의 왠만한 남자들은
삼순이에 푹 빠져있다는 사실을.
금요일 이 야심한 시각에 따위넷에 댓글을 달다니. 별일이군. 별일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