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쎄다. 잘 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잠자리에 누운 아이들 곁에 가 누우면 아이들이 이런다.
“아빠, 또 오늘의 은유 하려고 그러죠? 주제가 뭐예요?”
나는 책이니, 아침이니, 엄마 젖가슴이니 하는 주제들을 불러준다.
아이들은 알고 하는 건지 모르고 하는 건지 한 마디씩 떠든다.
나는 합격, 불합격으로 아이들의 오늘의 은유를 평가한다.
아이들의 수준은 이렇다.
“엄마 젖가슴은 찐빵이다.”
“책은 우주다.”
“백운대는 바늘이다.”
아이들을 재워 놓고 서울대 출판부에서 나온 <<은유>>를 꺼내 읽는다.
마음에 드는 구절이 있어 옮겨 적는다.
“중세기의 기독교 사회에 있어 기본적인 은유는 세상은 神이 著述한 책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어떤 책과 마찬가지로 이 책도 표면적으로 ‘말한 것’보다는 더 많은 것을 ‘뜻’할 수 있었고 또 했던 것이다.”
글쎄다. 옛날 말로 호적대장에 잉크도 안 마른 놈들을 상대로 오늘의 은유라니.
이게 뭐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혹자는 아이들 참 엽기적으로 키운다 할 지도 모르겠다.
애비가 엽기적이니 할 수 없다.
같은 책의 앞머리에 이런 구절이 있다.
“比喩言語(figurative language)란 그 언어가 서술하는 바를 의미하지 않는 언어이다.”
나는 무엇을 의미하고 싶었던 것일까.
오늘 밤에도 의미가 바람에 스치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