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과 금기

엽이가 언이의 사진을 오렸다고 우가 와서 일렀다. 과연 그랬다. 나는 사진은 오리는 거 아니라고 말해 주었다. 언이는 자기가 오리라고 그랬다고, 그러니 괜찮다고 말했다. 나는 어/쨌/든/ 사진은 오리는 거 아니라고, 다시는 오리지 말라고 말했다. 나는 왜 사진은 오리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을까?

엽이가 오려놓은 언이의 사진을 본 아내가 누가 그랬느냐고 물었다. 자초지종을 말해 주었다. 부부간의 대화를 들었는지 컴퓨터를 하고 있던 언이가 쪼르르 달려나와 자기가 오리라고 그랬다고, 그러니 괜찮다고 말했다. 그러더니 자기도 사진을 오려도 되냐고 물었다. 나는 안 된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나는 왜 사진은 오리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을까?

언이는 방문을 닫고 들어 갔다. 나는 녀석이 삐졌나보다고 단순하게 생각했다. 얼마 후, 언이가 손을 등뒤로 감춘 채 나왔다. 손에는 사진에서 오려낸 제 모습이 들려 있었다. 녀석의 얼굴에는 득의가 양양했다. 나는 두 번 다시 오리면 안 된다고, 한 번만 더 오리면 아주 혼내 주겠다고 말했다. 나는 왜 사진은 오리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을까?

나?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사진에, 따라서 그 기억에, 따라서 내 정체성에 길길이 방화한 적은 있어도 사진을 오린 적은 없다. 그래서 그게 뭐 어쨌다는 건가?

금기가 없는 아이들이 무섭고 부럽다.

Posted in 블루 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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