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카메라를 들고 떠나다

이미지프레스 이상엽/임재천/강제욱/노순택 글과 사진, <<낡은 카메라를 들고 떠나다>>, 청어람미디어, 2004

물론 나도 떠나고 싶다. 문제는 들고 떠날 낡은 카메라가 없다는 것. 그러니 들고 떠날 낡은 카메라를 장만할 때까지는 안타깝지만 나는 떠나지 못한다. 사정이 대략 이와 같으니 책상앞에 죽치고 앉아서, 나여, 독후감 따위나 쓰면서 떠나고 싶은 마음을 억눌러보자.

삼차원의 공간을 이차원에 가두려하다니. 대학 때 아르바이트해서 카메라 샀다고 자랑하는 친구에게 난 이 비슷한 말을 했던것 같으다. 왜 그랬을까. 계속해서 이어진 사진에 대한 이러저러한 나의 얘기에, 내 친구는 짜식이 보기와는 다르게 사진에도 관심이 있었네, 하며 강한 인상을 받는 듯 했지만, 내가 저 말을 했던 건 순전히 질투심 때문이었다. 그렇다. 난 카메라가 갖고 싶었다.

잠시 예전에 썼던 글을 찾아본다.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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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취업을 해서 내 손으로 돈을 벌어 제일 먼저 산 고가의 귀중품은 카메라다. Nikon FM2! 나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이 기종을 원했다. 그 후 많은 피사체를 찍었지만 어떤 피사체도 제대로 사랑할 줄을 몰랐던 나는 곧 사진 찍는 일을 그만 두었다. 그저 여행가서 기념사진을 찍거나, 이제 결혼하여 가끔 볕 좋은 날 아이들을 찍어줄 뿐이다.

요즘 그대는 감히 이 카메라를 노리고 있다. 빌려 달라, 하고 아예 저렴한 가격에 팔라, 하기도 한다. 솔직히 그대가 정말 ‘예술’을 하겠다면 아예 기증할 의사도 있다. 아, 그대가 예술을 하겠다는 데 그깐 카메라 한 대가 문제겠는가. 아내 몰래 집문서를 내줄 용의도 있다. 아, 소주는 물론 그대가 사야한다. .

그렇다. 나는 그대를 지지한다. 그대의 욕망을 지지한다. 뭔가를 찍고 싶은 그대의 그 대책 없는 욕망을 나는 절대적으로 지지한다. 그 욕망은 한때는 나의 것이었다..

나에게 Nikon FM2는 <베로니카의 이중생활>의 이렌느 야곱이 들고 있는 카메라와도 같다. 내가 이 고단하고 아름다운 삶의 여정에서 언젠가 ‘나와 절대적으로 같은, 나는 절대로 아닌, 또 다른 나인, 나의 분신을, 나의 아바타를’ 만나게 되면, 그때는 나도 다시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셔터를 누르게 될지도 모른다. 그래, 이래도 내 카메라가 탐나는가?.

에라, 이, 순,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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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싸이월드 미니홈피에 올린 글인데 그 미니홈피는 개점휴업상태니 아까워서 여기 다시 옮겼다. 아까워 하는 까닭은 바로 이대목 때문이다. “나와 절대적으로 같은, 나는 절대로 아닌, 또 다른 나인, 나의 분신을, 나의 아바타를” 크. 죽인다. 아줌마, 여기 소주 일 병 더! 아참 지금은 술마시는 게 아니구나. 미안타. 아무튼 <베로니카의 이중생활>을 보면 이말이 무슨 뜻인지안다. 참고로 나는 이 영화의 DVD 타이틀을 구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였으나 구하지 못했다. 비디오는 나와 있다. 각설하고.

아주 오래 전부터 카메라가 갖고 싶었고, 쬐끔 오래 전에 카메라를 갖게 되었지만, 마구 찍는다고 사진이 나올 턱이 있나. 나는 곧 카메라를 잊었다. 내가 카메라에, 혹은 사진에 다시 관심을 갖게 된 건 순전히 이 따위넷 때문이다. 글만 올리면 영 심심한 것이고 해서 이미지라도 올리자니 카메라가 필요하고, 그나마 가지고 있는 디카는 99년에 산 것이라 아주 고색창연하여 영 마음에 들지 않고, 그러다가 다시 쳐박아 두었던 FM2를 꺼내 들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예전에 안나오던 사진이 이제와서 잘 나올 턱이 있나. 해서 이러저러한 사진 사이트도 구경해 보고, 브뢰송이니 카파니 신디 셔먼이니 만 레이니 하는 사진가들의 이름도 들어보게 된 것이다. 그런데 사진, 이게 갈수록 장난이 아닌거다. 그런 와중에 우연히 집어 들게 된 책이 이 책이다.

책 내용은 이렇다. 오늘은 Leica M3 들고 이리로 떠나 사진 찍었다. 이 카메라 사진 정말 잘 나온다. 내일은 Rollei 35SE 들고 저리로 떠나 사진 찍었다. 이 카메라 사진 정말 잘 나온다. 그리고 말만 하면 안 믿을 테니 실제로 들고 떠난 낡은 카메라로 찍은 사진들이 군데군데 인쇄되어 있다. 물론 사진 멋있다. 사진발은 그렇다 치고, 글발은 어떤가? 글쎄다. 건성건성 읽어서. 그냥 무난하달 밖에.

결론: 도대체가 낡은 카메라를 들고 떠나다, 라니. 제목 너무 한다 싶다. 그렇지 않아도 떠나고 싶어 안달이 난 사람들 가슴 한 가득 구닥다리 감수성을 잔뜩 불러일으키는 ‘센치’한 제목이다. 또 하나 이 책의 문제는 이 책에 나오는 낡은 카메라를 모조리 가지고 싶게 만든다는 것. 하나 둘도 아니고, 한 두 푼도 아니고.

어떤 그림 좋아하세요?

박파랑 지음, <<어떤 그림 좋아하세요?: 어느 불량 큐레이터의 고백>>, 아트북스, 2003

그러니까 나도 부모는 부모여서 내 아이들의 장래에 대해서 고민을 하기는 하는 것이다. 고민이라고 해봐야 ─ 아이의 재능유무는 차치하고서 하는 얘긴데 ─ 가령 “어느 날 갑자기 아이가 피아니스트가 되겠다고 폭탄선언을 해버리면 어쩌나. 나 레슨비 댈 능력 없는데…그래도 부모가 되어가지고설랑은 아이 뒷바라지는 해주어야하니, 저런 덜컥하는 때를 대비해서 돈을 많이 벌어야지. 그런데 뭐해서 떼돈을 벌지.”하는 정도이기는 하지만, 대개 이런 류의 고민은 그 ‘내용’은 별거 아니지만 그 ‘해결책’은 지난한 법이니, 당장 해결될 기미도 없는 쓸 데 없는 고민은 뒤로 미루고, ‘내용’있는 고민을 좀 해보기로 하자.

요즘 많이 하는 인사 중에 “좋은 하루 되세요.”라는 말이 있다. <<아하, 그 말이 그렇구나>>라는 책에 보니, 사람이 어떻게 하루가 되느냐면서, 그건 하루를 두 번 죽이는 일이라면서 저 문장이 문법적으로 잘 못된 문장이라고 쓰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좋은 말이다. 그러니 이 글을 읽는 사람은 앞으로는 “좋은 하루 되세요.”라는 의미를 의미하고 싶을 때는 “좋은 하루 되세요.”라고 말하지 말고 “좋은 하루 보내세요.”라고 사용하기 바란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하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냥 “좋은 하루 되세요.”라고 써도 뭐라 그러는 사람 없다.

객쩍은 소리 그만 하고 지금 내가 주목하고 싶은 동사는 ‘되다’이다. “넌 이 다음에 커서 뭐가 되고 싶니?” “넌 이 다음에 대체 뭐가 되려고 그러니?” 등과 같은 문장에서 사용되는 ‘되다’이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 ‘되다’라는 말을 가장 어렵게 사용한 사람은 들뢰즈인데, 그가, 혹은 그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무슨무슨되기’는 도대체가 뭔 말인지 통 이해가 안 되고 이제는 이해하고 싶지도 않으니 ─ 한때는 <<천개의 고원>>까지 읽어가며 들뢰즈를 이해하려고 노력했었으나 이제는 포기해 버렸다. 막말로 이해 못하면 좆 된다면 나는 순순히 좆 되겠다. ─ 나는 그냥 ‘웅녀가 마늘을 먹고 인간이 되었다’라든가 ‘나는 일찍 자고 늦게 일어나는 작가가 될거야’하는 문장에서 사용되는 ‘되다’처럼 ‘되다’를 사용하련다. 아무튼 ‘되다’가 문제다. 너도 나도 무엇인가가 되려고 머리 싸매고 공부하고 박 터지게 싸우고 그런다. 차라리 아무 것도 되지 않는 것이 미덕이 아닌가 싶을 때가 있다.

서론이 길었다. 이제 본론. 나는 내 딸아이가 미학과를 갔으면 좋겠다. 미학과를 나와 큐레이터가 되었으면 좋겠다. 맞다. 이거, 나는 늦었으니 자식을 통해서라도 내 꿈을 이루고 싶다는 얄팍하고 얍삽하고 속물적인 태도 맞다. ─ 오해를 피하기 위해서 말하자면 어려서 내 꿈은 과학자였다. 화가라든가 큐레이터라든가 하는 꿈은 꾸어본 적도 없다. 물론 재능도 없었고. ─ 물론 큐레이터가 되려면 꼭 미학과를 나와야 하는 것은 아니니, 딸아이에게 미학과를 가라고 강요할 생각은 없다. 또 이 책의 뒤표지에 있는 “큐레이터가 우아해 보인다고? 현장에서 일해봐, 완전히 ‘노가다’야!”라는 정도의 인식은 진즉에 가지고 있었으니 큐레이터가 되라고 강요할 생각도 없다. 강요한다고 따라주지도 않겠지만. 그냥 그렇다는 얘기다.

‘어느 불량 큐레이터의 고백’이라는 부제의 ‘불량’이라는 말이 오히려 정답게 느껴진다. 헌사부터 지은이의 ‘불량’스런 성격 드러난다. “지랄맞은 성격을 물려주신 엄마와 게으름을 물려주신 아빠께 이 책을 드린다.”

갑자기 김현의 <<행복한 책읽기>>의 문체를 빌어 얘기하자면 ‘이 책은 읽을 만하다.’ 개인적으로(라고까지 말할 필요까지는 없지만, 이미 이 독후감 자체가 개인적인 독후감이니까.) 가장 인상 깊었던 구절은 이렇다. “그들은 자신의 취향에 돈을 쓴다. 취향은 생김새만큼이나 개개인에게는 고유한 것이므로, 그런 만큼 차별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사람들은 예술에 대한 취향 때문에, 그 안목 때문에 돈을 쓰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예술품 구매는 자신과 남을 구별하는 방식이고 그 차별을 문화적으로 합리화하는 장치이다.” <<한국의 부자들>>에 나오는, “정확히 중심에 알을 박아야한다.”고 부동산 재개발 정보를 알아내 땅을 사두었다가 폭리를 취하는 ‘알박기’의 노하우를 가르쳐주던 부자도 이런 취향을 좀 가졌으면 좋겠다.

선물

스펜서 존슨 지음, 형선호 옮김, <<선물 The Present>>, 중앙M&B, 2003

<<누가 내 치즈를 옮겼나?>>를 쓴 스펜서 존슨의 책. 그 책을 보고 감동 먹은 경험이 있는 사람은 또 감동 먹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으나, 손에 잡은지 20분만에 뚝딱 읽어치운 내 결론은 역시나 “아니 올시다.”다. 내 돈주고 사서 읽은 거 절대 아님. 이 책 값 8,500원이면 참이슬이 몇 병인데…

내용:
어떤 할아버지가 어떤 소년에게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선물(The present)을 준다고 함. 소년 기다림. 할아버지 안 줌. 아니 할아버지가 그 선물은 직접 찾아야 하는 것이라고 말함. 소년 나중에 나중에 그 선물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그 선물이 무엇인지 알게 됨. 그 건 바로 현재(The present) 였음.

이 책이 주장하는 교훈:
현재 속에 살되, 과거에서 배우고, 미래를 계획할 것. 소명을 가지고서…

단상:
그런데 나 같으면 그 지혜로운 할아버지에게 고마워하기는 커녕, 그 수염이라도 잡아채려고 했을 거 같음. 왜냐? 선물(the present)과 현재(the present)의 동음이의어를 가지고 말장난, 그것도 몇 년에 걸쳐서 말장난을 한 대가임. 망할 놈의 punning!

타인의 고통

수잔 손택 지음, 이재원 옮김, <<타인의 고통 Regarding the Pain of Others>>, 이후, 2004

내가 이 책을 사던 날, 그러니까 2004년 4월 22일 북한의 평안북도 용천역에서 대폭발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국내 언론이 보여줄 수 있는 그림이라고는 고작 폭발이 있기 전의 위성사진뿐이었다. 다음날 혹은 그 다음날 폭발로 인해서 ‘깊게 파인 웅덩이’를 찍은 사진과 폐허가 된 ‘룡천소학교’ 사진이 외신을 타고 들어왔다. 깊이가 10m에 달하는 웅덩이가, 그리고 꼭대기 층이 완전히 날아가 버린 학교 건물의 모습이 당시의 폭발의 충격이 얼마나 컸는지를 짐작할 수 있게 해주었다.

다음날 혹은 그 다음날 마침내 부상으로 고통스러워하는 북한 어린이들의 모습을 촬영한 장면들이 신문에 나고 텔레비전에 방영되었다. 화상을 입고 기본적인 치료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신음하고 있는 모습은 보는 이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사진은 뭐하는 물건인가. 그것은 뭔가를 보여주는 물건이다. ‘뭔가’는 부정형이니 이제부터 그냥 ‘이미지’라고 부르기로 하자. 다시 말하자. 사진은 ‘이미지’를 보여준다. 사진은 피사체를 대상화하고, 현실을 추상화한다. 사진이 보여주는 것은 대상 그 자체가 아니고 대상의 ‘이미지’이다.

이 책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이미지는 책의 제목처럼 ‘고통’이다. 그것도 ‘나’나 ‘우리’의 고통이 아닌 ‘타인’의 고통이다. 타인의 범주에 속하지 않는 나 혹은 우리는 사진을 통해서 타인의 고통을 이미지로 본다.

우리는 타인의 고통에 눈을 돌리기도 하지만, 타인의 고통에서 눈을 돌리기도 한다. 우리는 결국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을 본다. 우리가 타인이 고통 받는 모습을 보고 싶어한다고? 물론!

인간에게는 “뭔가 소름끼칠 만큼 섬뜩한 것을 보고 싶어”하는 욕망이 있다. “고통 받는 육체가 찍힌 사진을 보려는 욕망은 나체가 찍힌 사진을 보려는 욕망만큼이나 격렬한 것”이고, “전쟁은 도저히 보고 싶어 견딜 수 없는(…)소식이었고, 지금도 그렇다.” “매혹적인 육체가 외부의 공격을 받는 광경을 보여주는 모든 이미지들은 어느 정도 포르노그래피”이고, “의도했든 안했든, 나머지 우리는 관음증환자이다.”

사진의 영향력은 대단하다. 사진은 대상을 이미지화 한다. 사진에 찍히지 않은 ‘민생 살피기’는 민생 살피기가 아니다. 정치인들은 사진 찍히기 위해서 민생을 살핀다. 아니 민생을 살피는 이미지를 연출한다. 심지어 “사진에 찍혀야만 그 전쟁이 ‘현실적‘인 것이 되는” 것이다. ‘우리’와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일어나는 고통들은 이제 ‘이미지’화 되어 유통되고 소비된다. 그게 전부다. 이게 문제다. “사방팔방이 모조리 이미지로 뒤덮인 세계에서는[…]우리는 완전히 무감각해져” 버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진이 먼 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고통을 우리 눈앞에 가져온다는 걸 알았다고 해서 도대체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외면하는 방법이 있다. 수잔 손탁이 1993년에 만난 사라예보의 한 여인의 말을 들어보자. “세르비아인들이 크로아티아를 침략했던 1991년 10월 저는 깔끔한 제 아파트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사라예보는 평화로웠죠. 제 기억으로는 저녁 뉴스에서 부코바르가 파괴되었다는 보도가 흘러나왔는데, 그곳은 이곳에서 몇 백 마일밖에 안 떨어져 있어요. 그때 전 이렇게 생각했더랍니다. ‘아, 끔찍한 일이군.’ 그리고는 채널을 돌렸습니다. 저도 그랬는데, 프랑스나 이탈리아나 독일 사람들이 매일 이곳에서 벌어지는 살육 소식을 저녁 뉴스로 보며 ‘아, 끔찍한 일이군’이라고 한 마디 하고는 딴 프로그램을 본다고 해서 화를 낼 수는 없지 않겠어요? 늘 그런 식이죠. 사람이란 그런 존재입니다.”

이렇게 외면하게 되는 동기는 우리가 덜 도덕적이어서가 아니다. 무력감 때문이다. 그 일련의 사태에 대해서 우리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거 남의 얘기가 아니다. 내 얘기다. 이라크 팔루자에서 미국이 끔찍한 살육을 저지르고 있다는 뉴스를 보면서 내가 취하는 행동이다. 술자리에서 부시는 개새끼다라고 말하고 나면 땡이다.

두 번째는 연민의 감정을 품는 것이다. 그러나 연민은 어쩌면 자기 기만적이다.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연민을 느끼는 한, 우리는 우리 자신이 그런 고통을 가져온 원인에 연루되어 있지 않다고 느끼는 것이다. 우리가 보여주는 연민은 우리의 무능력함뿐만 아니라 우리의 무고함도 증명해주는 셈이다. 따라서 (우리의 선한 의도에도 불구하고) 연민은 어느 정도 뻔뻔한 (그렇지 않다면 부적절한) 반응일지도 모른다.” 더군다나 “연민은 변하기 쉬운 감정이다.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이런 감정은 곧 시들해지는 법이다.”

그렇다면 대체 무엇을 하란 말인가. 수잔 손탁은 우리에게 이거를 하라고 한다. 즉 “우리의 특권이(…)그들의 고통과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숙고해 보는 것, 그래서 전쟁과 악랄한 정치에 둘러싸인 채 타인에게 연민만 베풀기를 그만둔다는 것, 바로 이것이야 말로 우리의 과제이다.”

그러나 결국 “‘우리’, 즉 그들이 겪어 왔던 일들을 전혀 겪어본 적이 없는 ‘우리’ 모두는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는 알아듣지 못한다. 우리는 전쟁이 얼마나 끔찍하며, 얼마나 무시무시한 것인지, 그리고 어떻게 그런 상황이 당연한 것처럼 되어버리는지 상상할 수조차 없다. 이해할 수도, 상상할 수도 없다. 전쟁이 벌어지던 바로 그때에 포화 속에 갇혔으나 운 좋게도 주변 사람들을 쓰러뜨린 죽음에서 벗어난 모든 군인들, 모든 언론인들, 모든 부역 노동자들, 독자적인 모든 관찰자들이 절절히 공감하는 바가 바로 이점이다. 그리고 ‘그들‘이 옳다.”

텔레비전에 대하여

피에르 브르디외, 현택수 옮김, <<텔레비전에 대하여 Sur La Télévision>>, 동문선, 1998 초판, 2000 2쇄

오늘 아침 일이다. 딸아이가 거실이 떠나가라 볼륨을 높여 놓고 테레비를 보고 있었다. 시끄러웠다. 나는 볼륨을 줄이라고 명령했다. 리모콘을 손에 쥐고 있던 딸아이가 볼륨을 조금 줄였다. 나는 내가 듣기에 그리 시끄럽지 않은 레벨 ─ 08 ─ 까지 줄일 것을 명령했다. 아이는 복종했다. 그러나 잠시 뿐이었다. 내가 현관문을 열고 신문을 들고 들어오는 2초도 안되는 사이에 아이는 다시 리모콘으로 볼륨을 높이고 있었다. 볼륨은 그새 레벨10을 지나고 있었고 그냥 내버려 두었으면 다시 시끄럽게 느껴질 만큼 커질 것이었다. 나는 리모콘을 빼앗아 테레비를 아예 꺼버렸다. 아이는 억울했나보다. 눈물을 글썽거렸다. 속으로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혹시 다른 집 아빠는 안 그러는데 왜 우리 아빠만…?

갈수록 테레비가 재미없다. 토론 프로그램은 원래 재미없고, 오락 프로그램은 원래 유치빤스다. 내가 좋아하는 미모의 탤런트는 어서 뭐하는지 테레비에는 도통 나오질 않는다.

그런데 이게 다가 아니다. “저널리즘의 세계는 하나의 소우주로서 그 자신의 법칙을 갖고, 전체 세계 안에서의 위치와 다른 소우주와의 친화 · 배척 관계에 의하여 정의”된다. 제아무리 조선일보라고 해도 “논설위원이 쓸 수 있는 것과 쓸 수 없는 것”이 있고, 그때는 무슨 까닭인지 말하지 못하고 이제와서 <이제는 말할 수 있다>고 말하는 텔레비전도 있다.

왜 그런가? 이 따위 물음에 대한 답이 궁금한 사람들은 일독하면 되겠다. 워낙 대충대충 읽어서 나는 잘 모르겠는데 번역이 후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