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편지

<아들의 편지>
“사랑하는 어머니, 저를 위해 풀어헤쳐 보이실 세 번째 젖가슴이 있으신지요. 저는 지금 빨리 출세해야할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저에겐 지금 천이백 프랑의 돈이, 어떤 희생을 치르고서라도 이 돈이 꼭 필요합니다. 제 요청에 대해서 아버지께 아무런 말씀도 하지마십시오. 아마 아버지는 반대하실 테지요. 이 돈을 마련하지 못하면 저는 절망에 사로잡혀 권총으로 제 머리를 쏘아버리게 될 것입니다. 돈을 부탁드리는 이유는 뵙게 되면 곧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어머니의 답장>
“사랑하는 아들아, 네가 부탁했던 것을 보낸다. 이 돈을 잘 써라. 네 생명을 건지는 일이라고 하더라도 두 번 다시 이렇게 많은 돈을 네 아버지 모르게 보낼 수는 없을 거야. 아버지가 아시게 되면 집안의 평화가 깨어지겠지. 이만한 돈을 만들려면 땅을 저당잡혀야만 한단다. 나는 네 계획이 좋은 것인지 판단할 수가 없구나. 도대체 어떤 계획인지 나에게 얘기하는 것이 두려우냐? 네 계획을 설명하는데는 수 많은 편지를 보낼 필요가 없단다. 한 마디만 써보내면 걱정을 안할 수 있지. 네 편지를 읽고 괴로웠다는 것을 숨길 수가 없구나.”

밤의 트랙에 비가 내렸다

밤의 트랙에 비가 내렸다 곳곳에서 바람소리가 났다 그럴 때마다 트랙에 늘어선 나무들이 격렬하게 흔들렸다 그럴 때마다 트랙에 길게 누운 나무 그림자들이 나무들보다 더 격렬하게 흔들렸다 밤의 트랙에 비가 내렸다 놀랍게도 아무렇지도 않았다

아카시아 향을 따라가는 시간의 트랙백

밤의 트랙에 아카시아 향이 가득하다.
나는 뒷산에서 그 꽃을 따먹던 시절이 덜컥
그리워졌다.
‘이건 그 시절로 가는 트랙백이야. ‘
트랙을 도는 내내 나는 이렇게 중얼거렸다.

그때는 내가 나였을까.

영화

1.
TV에서 해준 <보리울의 여름>을 보았어.

2.
영화는 후진 영화를 봐도 좋아.

3.
내 인생 최고의 영화는 <베로니카의 이중생활>:
그 중에서도 이렌느 야곱이 노래 부르다가 쓰러져 버리는 장면.
나 죽을 때도 그런 식으로 죽으면 좋겠다 생각했어.

것이다 유감

그러니까 내 말은 ‘것이다’란 종결형 어미 사용을 자제하자는 것이다.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아는 사람은 다 알 것이다.
내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는 사람은 언젠가는 알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