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용 쓰레기 투입금지. 거리의 쓰레기통마다 붙어있는 말이다. 볼 때마다 어딘지 불편하다. ‘용用’ 자 때문이다. ‘용’ 자는 쓸 용자인데 쓰레기는 버리는 것이니 일종의 모순어법oxymoron이다. 모순을 해결하자면 ‘가정출신 쓰레기’라고 해야할 터인데 우습다. 그냥 ‘가정 쓰레기’라고 하면 무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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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화 유감
버스 뒷자리에 앉았던 위인들이 촌스럽게 군화 얘기를 했다. 신병훈련소에서 발 사이즈가 270이었던 동기가 260짜리 군화를 지급받았다가 이러저러 해서 그냥 신게 되었는 데 결국 발 뒷굼치에 군화 독이 올라 고름이 두 바가지나 나왔다는 거였다. 그러자 내 머리 속에도 플래쉬백이 일어났다.
자대(라고 할 것도 없지만)배치 받던 날, 고참들이 나와 내 동기들의 군화를 빼앗아 지들끼리 사이좋게 나누어 가졌다. 어차피 단기사병은, 아참 아니지, 방위는 사복입고 출근하여 군복으로 갈아입고 근무하다가 다시 사복으로 갈아입고 퇴근하는 특수한 군인이니 그까짓 시커먼 군화 따위는 없어도 그만이었다. 더구나 나는 공군이라 근무할 때도 ‘약복’을 입었고 ‘단화’를 신었으니…
얼마 후, 고참 하나가 제대를 했고 그는 내 A급 군화를 광내서 신고 나갔다. 나는 그의 무운을 빌어주었다.
다시 얼마 후 후임병들이 왔다. 나서기 좋아하는 동기가 그들의 군화를 빼앗아 없는 동기애를 발휘하여 나와 내 동기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다 주고 자기 것이 없자 그는 그 다음 기수의 워커를 빼았았다(가 맞나 아니면 빼았었다가 맞나?).
나는 동기가 나에게 준, 후임병의 이름이 매직으로 이따만하게 적혀있는 워커를 한쪽 구석에 짱박아 두었다. 나는 조금 미안했다.
세월이 흘렀고 국방부 시계는 방위에게도 공평하여 마침내 바야흐로 드디어 파이널리 내가 제대(라고 하면 현역 출신들이, 더러는 여자들까지 꼭 시비를 거니 ‘소집해제’라고 해야지)하는 날이었다. 나는 년전에 짱박아 두었던 군화를 찾았다.
그러나 군화는 없었다. 누군가가 챙겨간 것이었다.
문자 그대로 ‘쪽팔려서’ 말도 못하고 나는 그냥 굴러다니는 군화를 아무거나 발에 맞는 걸로, 것도 짝짝이로 챙겨나왔고, 상투적이지만 부대가 있던 쪽으로는 오줌도 누지 않으리라고 생각하며 정문을 통과했고 부대 앞에서 버스를 집어타고 신촌으로 가서 술을 마셨다. 그까짓 시커먼 군화 따위는 아무래도 좋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소집해제후 7년 동안 예비군 훈련을 받아야 했던 것이었고 그때는 어쩔 수 없이 군화를 신어야 했던 것이다. 군화는 한쪽은 굽이 많이 닳았고 다른 쪽은 바닥에 못이 약간 튀어나와 있었다. 그래도 그거 신고 편의점 앞에 차단목을 설치하고 보초 서면서 편의점에 들어가 캔맥주 사마시고 그랬다. 안양 관동 교장에 함께 훈련 받으러간 동네 친구들과 K1소총으로 누가누가 깡통 잘 맞추나 내기를 하기도 했다. 당시는 정말 당나라 예비군들이어서 나는 예비군 훈련 받으러 가서 삼겹살도 구워먹고 심지어 삼삼오오 몰려앉아 포커도 쳤다.
훈련은 이런 식이었다. 가령 교관이 철조망 통과 요령을 설명한 다음 ‘숙달된 조교’의 시범을 보여주었다. 이제 우리 ‘선배님들’이 통과할 차례였다. 그러자 숙달된 조교들이 외쳤다. “선배님들, 빨리빨리 통과하십시오. 단 시간관계상 우회통과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슬렁 어슬렁 걸어서 다음 교장으로 이동하고는 했던 것이다.
아무튼 각설하고, 국가는 나에게 워커 하나 주지 않았다.
머리 자르다
“이리 앉으세요.”
“네.”
나는 의자에 앉으며 안경을 벗어 거울 앞에 놓는다. ‘언니’가 보자기를 내 목에 두른다.
(켁켁)
“어떻게 잘라드릴까요?’
참 난감한 질문이다. 내가 원하는 헤어스타일을 어떻게 설명할 방법이 없다. 그렇다고 장동건처럼 잘라주세요 할 수도 없고.
“그냥 귀 드러나게 짧게 잘라주세요.”
‘언니’는 더 묻지 않고 가위질을 시작한다. 나는 눈을 감는다. 떠도 보이질 않으니 감는 게 차라리 낫다. 난 딴 생각을 한다.
“어떠세요?”
가위질을 마친 ‘언니’가 묻는다.
“안 보여요. 잘 됐겠죠. 뭐.”
안경을 쓰고 보니 너무 길다.
“짧게 잘라 달랬는데…”
“많이 잘랐어요.”
“예.”
“더 잘라드려요?”
“아니 됐어요.”
길이만 빼고는 그럭저럭 나쁘지 않아 나는 크게 불만은 없다.
“샴푸하시겠어요?”
“아뇨, 집에 가서 하죠.”
“수고하셨습니다.”
“네. 많이 파세, 아니 안녕히 계세요.”
‘언니’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나도 씩 웃어주었다.
지렁이
비오는 거리를 ‘지나가다’가 전화통화를 하며 지나갔다 하필이면 그때 그곳을 기어가고 있던 말 못하는 ‘기어가다’가 ‘지나가다’의 무심한 발에 밟혔다 순간 ‘기어가다’는 ‘몸부림치다’가 되었다가 이내 ‘꿈틀거리다’가 되었다가 천천히 ‘멈추다’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