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짝이 없는 신발은 짝을 찾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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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m2 50mm 1:1.4F, ILFORD DELTA 400, 2004년 가을 다솔 유치원 신발장

짚신도 짝이 있다더니
정말이다. 봐라. 세상에
짝 없는 신발은 없다.
그러니 용기를 내라.

연이나
오늘 기온이 영하로 뚝 떨어졌다는데
내 이를 어여삐 여겨
이적지 짝이 없는 씩씩한 영혼들을 위하여
릴케의 시 구절을 살짝 비틀어서
딱 한 마디만 하겠다.

이제 짝이 없는 신발은 짝을 찾지 않습니다.

“술한테 무리한걸 요구하지 마라”

대화 중에 암호나 신용 카드 번호를 절대로 알려주지 마십시오.

따위 님의 말:
잊어야 할 게 너무 많았던 모양.
따위 님의 말:
술 먹고 한 짓을 복기하는 중.
현: 순하게,,, 님의 말:
???
현: 순하게,,, 님의 말:
오디야?
따위 님의 말:
행여 인터넷에는 주정하지 않았나
따위 님의 말:
확인중.
현: 순하게,,, 님의 말:
어젯밤에?
따위 님의 말:
현재까지는 별 거 없음.
현: 순하게,,, 님의 말:
술한테 무리한걸 요구하지 마라
따위 님의 말:
집.
따위 님의 말:
깨어보니
따위 님의 말:
아침이네
따위 님의 말:
오늘 못나가지 싶다.
현: 순하게,,, 님의 말:
저런….그래 푹 쉬고 멀쩡하게 월욜에 보자
따위 님의 말:
하하. 바이.
현: 순하게,,, 님의 말:
바바이

p.s.
“술한테 무리한걸 요구하지 마라”
메신저 저쪽에서 따위에게 이런 말을 해 준 그에게 무한 애정을 표현하며…

이 시간에 아빠가 집에 있으니, 언이만 신이 났다. 같이 놀자고 아주 난리가 났다. 어쩔 수 없이 나는 애 셋 아빠다. 이게 나다. 이 따위 인간의 자기정체성. 애 셋 아빠. 나. .

p.s. to p.s.
기쁜 소식 하나 더.
어제 교보문고에서 산 그 “엄청난” 책을 분실하지 않았다는 것!

겨울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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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m2, 50mm 1:1.4f, ILFORD DELTA 400

염려 말아요
나, 춥지 않아요
옷 벗은 것도 아니구요
뼈만 앙상하게 남은 것도 아니어요
난 그저 내 방식대로 계절을 지나가는 거예요
그게 나예요
그래요
나는 겨울 나무예요
당신의 희로애락과는 무관한

밤 버스

텅 빈 수족관의
뒷자리에 앉아

아저씨, 우리 바다로 가요.
아저씨, 우리 바다로 가요.

아저씨, 아저씨,
우리,
바다로 가요.

(담배를 피우고 싶다)

─황인숙, <<슬픔이 나를 깨운다>>, 문지시선 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