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려라~달려라~달려라~따위

“어제는 하루 종일 비가 내렸네”
해서 트랙을 뛸 수가 없었네.
해서 걸었네. 한 손엔 우산을 다른 한 손엔 고독을 들고
나는 비속을 걸었네.
“이 비속을 걸어갈까요. 다정스런 너와 내가 손잡고”
그러나 다정하게 손잡을 사람이
비오는 밤의 공원의 트랙에는 없어
나는 혼자 걸었네. 혼자 비속을 걸었네.
하루 쯤 빼먹어도 누가 뭐라는 사람 없지만
하루 빼먹으면 지금까지 들인 노력이 아까워
나는 아무도 없는 공원의 트랙을 걸었네.
걸으며 생각했네.
이 생각 저 생각 많은 생각 했네.
생각하며 이런 생각을 했네.
산책이 왜 사색하기에 좋은지
알 것 같았네.

오늘은 비가 오다가 그쳤네
해서 트랙을 뛸 수가 있었네.
해서 뛰었네. 한 손엔 손수건을 다른 한 손엔 오기를 들고
나는 트랙을 뛰었네.
뛰면 노래고 뭐고 없네.
나는 헉헉거리고
나는 아무 생각이 없네.
뛰면 생각할 필요가 없네.

하니는 없마가 보고 싶으면
꾹참고 달렸네. 달려라 달려라 달려라 하니.
나는 오늘 알았네.
하니가 왜 달렸는지.
뛰면 아무 생각이 안나네.
그래서 그랬네. 하니는 슬프면 달렸네.

나도 달리네. 나도 뭐 모종의 슬픔은 있지만
내색하기엔 이제 뱃살 만큼 낫살도 먹었으므로
그냥 눌러 담고 사네.
그러니 내가 달리는 건 하니처럼 슬퍼서가 아니라
엄마가 보고 싶어 미칠 거 같아서가 아니라
살빼려고 그러는 거네.
아직도 뛸 때마다 뱃살이 출렁거리네.
해서 오늘 뛰었네. 뛰다가 죽는 줄 알았네.
힘들어서 아주 쓰러지는 줄 알았네.

그래도 끝까지 뛰었네.
뛰면 아무 생각 없으니
나처럼 잡생각 많은 인간에겐
최고의 처방이라네.
노래 하나 부르겠네.

달려라~ 달려라~ 달려라 따위

그날이 마렵다

물론 지금도 나는 기억하고 있다 그날 세상엔 내 청춘의 기울기를 쓰러뜨리며 젖은 바람이 불고 몇 장 어둠이 졸속으로 내려앉았다 나는 체감온도 밑에서 떨었다 그날 나는 다시 죽어도 좋다고 각오를 했지만 막상 다시 죽어야 하는 날이 오자 내 지독한 근시의 안경을 벗어 던지며 비겁하게도 그 각오를 서둘러 잊었다 평생을 하루와 맞바꾼 그날을 나는 아무에게도 발설하지 못했고 내 불행한 일기장에 매립하지도 못했다 나는 늘 그날이 마려웠다

두통

새벽에 머리가 아파서 잠이 깨었다.
오른쪽 머리껍질이 견디기 힘들게 따끔거렸다.
찬장을 뒤져 아스피린을 거내 먹었다.
시계를 보았으나 시간이 보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