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냐 넷째냐 그것이 문제로다

경부고속도로 상행선 양재아이씨에서 한남대교까지는 상습정체 구간이다. 어제는 급하다면 급하다할 만한, 실로, 참으로, 모름지기, 자고로, 중/차/대/한 일이 있어─나 말고 아내에게─이 구간을 지나며 버스전용차로를 살며시 이용했다. 우리 5인 일가족이 다 타고 있었지만 합법 주행 정족수에는 한 사람이 모자라 투명인간을 급조해서 동승시킬 수 밖에 없었다. 아울러 세상 모르고 자고 있던 언이를 깨워 앉혀, 밖에서 사람 머리가 하나라도 더 보이게 조치했다. 됐다. 가자.

졸지에 차가 씽씽 달리니 아이들만 신이 났다.

아빠, 우리 맨날 이리로 달리자. 다 서 있는데 우리만 빨리 가니까 좋다. 야, 이거 걸리면 벌금이 7만원인가 그래. 벌점도 있을 걸. 벌점이 뭐야? 국가가 교통법규 위반 행위에 대한 벌로 운전자에게 하사하시는 점수란다. 벌점이 많으면 면허 정지나 면허 취소를 당할 수도 있어. 헐.

그러다가 기어이 넷째 하나만 더 제작하면 떳떳하게, 당당하게, 버스전용차로로 다닐 수 있다고 말하고 말했다. 예상대로 아내가 딴지다.

야, 우리집에 갓난애기가 징징거리며 기어다닌다고 생각해 봐라. 엄마, 그건 안 돼. 절대 안 돼. 마네킹 하나 태우고 다니면 되겠다. 야, 그러지 말고 니 미련곰탱이 인형이라도 적재하고 다니자. 그래, 그게 좋겠다.

이게 산 교육이지, 산 교육이 뭐 별 건가. 가족간의 국민과의 대화는 무르익어 가는데 운전자인 나는 속이 탄다. 걸리면 뭐라고 뻥을 치나? 부모님 임종 지키러 가는 중이라고 해야 하나? 그러다가 문득 치사한 생각이 하나 들었다. 애 셋을 태우고 다니는 차는 버스전용차로를 무제한 이용할 수 있다고 국회에서 법 하나 만들어 주면 좋겠다는 게 그것이다. 그리 되면 국가는 출산율 높이니 좋고 나는 빨리 가니 좋고, 누이 좋고 매부 좋고, 임도 보고 뽕도 따고, 도랑 치고 가재 잡고, 국가 좋고 국민 좋고, 이래 좋고 저래 좋고, 좋고, 좋고, 좋고…

아깝다. 지난 번에 미디어법 의결할 때 이런 훌륭한 법안을 살며시 낑겨 넣었어야 하는 건데…
그냥 버스를 한 대 사야겠다.

내가 나에게

엄마, 내가 나한테 안녕이라고 문자를 보냈더니 나한테 안녕이라고 문자가 왔어. 오호, 그래? 그게 되는구나. 엉뚱한 딸 둔 덕분에 좋은 거 하나 배웠다. 그리하여 나도 나에게 가끔씩 문자를 보내기로 한다. 외로운 내가 고독한 나에게, 사람이 그리운 내가 당신이 그리운 나에게, 술 마시고 싶은 내가 감기 걸린 나에게, 아슬아슬한 내가 위태위태한 나에게, 떠나고 싶은 내가 떠나지 못하는 나에게, 영화 보고 싶은 내가 만화 보고 싶은 나에게, 배 나온 내가 삼겹살 먹는 나에게, 우우, 그리고 빌어먹을 내가 염병할 나에게, 사랑한다고, 행복하라고, 괜찮다고, 곧 나을 거라고, 잘 갔다 오라고, 그만 먹으라고, 정신 차리라고…

일기, 스팸을 구워 먹는 저녁

어제는 오전에 누군가에게 문자를 보냈는데 답이 없었다. 그래서 마음에 작은 상처를 입었다.

저녁에는 스팸을 구워 아이들에게 저녁을 먹였다. 스팸 통조림 하나는 8등분하는 게 무난하다. 8등분한 스팸을 다시 반씩 잘라 총 16 조각의 햄덩어리를 두 번에 걸쳐 구웠다. 1차로 8조각을 식탁에 올렸더니 아이들이 8 나누기 4는 2해서 두 조각씩을 차지한다. 나머지 8조각의 햄이 후라이판에서 익어가는 걸 본 언이 물었다.

아빠, 더 하는 거야?

아니, 빼는 거야.

그러자 우와 엽이 쿡, 쿡, 하고 기가막히다는 듯이 웃었다. 아내는 열 시가 다 돼서야 돌아왔다.

그대, 후배

나처럼 뾰족한 인간에게도 어쩌다 전화해서 안부를 물어주는 후배가 있으니, 후배를 잘 챙겨주는 게 모름지기 선배 된 자의 도리이겠으나, 그러지 못하는 내 성정이 이럴 땐 몹시 안타까운 것이다.

“연극의 3대 요소가 뭡니까? 배우, 관객, 무대 아닙니까? 그중에 관객이 없으니 당연히 어렵다고 얘기하는 건데 선배가 설득은 않고 쪽박 먼저 깨버렸잖아요.”
“어떤 놈이 그거래? 틀렸어. 연극의 3대 요소는 타카, 청테이프, 글루건이야. 그거 없으면 연극이 돼? 안 돼?” (식객 115화 돼지 껍데기 편)

내 비록 가난한 연극판에는 얼씬거린 적도 없기는 하다만, 그대와 저런 식으로 대사를 치면서 쐬주 한 잔 하고 싶다. 오늘 밤에도 돼지 껍데기가 초겨울 찬 바람에 스치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