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랬다

서울 남영동에는 극장이 두 개 있었는데, 기억이 확실하지는 않지만, 그 하나는 이름이 성남극장이었(을 것이)다. 거기 가서 이소룡 나오는 영화를, 아니 영화 자체를 처음 보았다. 나는 그 허무맹랑한 영화가 여태 정무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최근에 이소룡 평전에 나온 줄거리를 보니 그 영화는 당산대형이었던 것 같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장면은 얼음공장 내에서의 결투 장면이다.

또 하나의 극장은 숙대입구 쪽으로 난 굴다리 근처에 있었는데 이름은 잊었다. 그 극장 앞에서 데미안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고, 그 극장 앞에서 박정희가 죽었다는 호외를 읽었고, 그 극장 앞에서 둘리스 내한 공연 팜플렛을 봤고, 그 극장 앞에서 두 번째 B자를 이상하게 쓴 ABBA의 포스터를 봤고, 그 극장 앞에서 아침마다 중학교 가는 버스를 탔다. 그 극장 앞에서 마음에 드는 여학생에게 뺀지 같은 걸 맞았어봐야 했는데 불행하게도 그래 보질 못했다. 그랬다.

호박 만두

만두의 역사 같은 건 난 모른다. 알고 싶지도 않다. 그딴 건 사대강에, 오대양에, 육대주에, 대역사 포크레인 삽질 하실 적에 지구 깊쑤키 암매장 해버려도 좋다. 그딴 거 궁금해 하는 놈은, 이건 용기를 내서 말하는 건데, 루저다. 그래, 내가 방금 루저라고 말했다. 어쩔래? 자, 다 덤벼봐, 덤벼보라구. 만두의 역사도 모르는 루저 같은 것들이…

만두의 재료 같은 것도 역시 알고 싶지 않다. 그딴 건 진즉에 진시황 병마용에 같이 묻어버려야 했다. 아, 꿩 넣은 꿩만두가 그렇게 맛있다는데 먹어 본 적이 없는 거 같다. 여태 뭐하고 살았나 싶다. 베를린의 어린 시절 같은 오릿돌의 어린 시절, 서리가 하얗게 내린 아침 들판에서 얼어죽은 꿩 한 마리를 주워온 적은 있다. 그래, 귀여니의 그 놈은 멋 있었고, 당숙모의 꿩도리탕은 맛 있었다.

며칠 전부터 호박 만두가 먹고 싶어 졌다. 호박 만두는 여름철에 먹는 만두인데 카트만두에서도 호박 만두 해 먹는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호박 만두, 이든 듣기만 해도 가슴이 뛰는 말이다. 그래, 거선의 기관과 같이 힘이 있다. 생각만 해도 침 넘어가고, 상상만 해도 환장하겠다. 치정이 따로 없다.

오, 호박 만두여. 그러나 지금은 여름이 아니고, 호박이야 마트 가면 있겠지만 호박 만두에 호박 말고 또 뭐가 들어가는지 잘 모르겠거니와, 설사 레서피를 안다 해도 기꺼이 호막 만두 만들어 줄 사람도 없다. 혹시나 어머니 한테 부탁해 보면 해주실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사진에 텍스트를 넣는데 그게 똑바로 서질 않고 옆으로 눕는다고 무슨 이런 거지 같은 프로그램이 있느냐고, 아래아는 또 어떻게 까는 거냐고, 다른 사람은 메일 용량이 남아 도는데 당신 한메일 용량은 100메가가 벌써 진즉에 꽉 차버렸다고, 노인복지관으로, 구청으로, 도서관으로, 동가식서가숙하면서 다 늙어서 컴퓨터 배우러 다니느라 눈코귀입 뜰 새 없이 바쁘신 어머니가 호박 만두 만들어 주실지는 만무하니…

이 늦가을-초겨울 비 그치면 불곡산 긴 능선에 서러운 단풍이 짙어 오것다. 그리하여 나여, 운동 전 몸무게로 거뜬히 복귀한 거구의 따위여, 그대는 호박 만두 먹고 싶을 만두 하것다.

이명

잠든 새벽에도 늦은 밤에도
팽팽한 명주실 울리는 소리
이제 이명도 나의 것이 돼간다.

너에게 망치를 보낸다

오빠, 너무 멋있어요. 완전 짱이예요. 오빠는 바람이예요, 불이예요, 번개여요. 어떻게 사람 몸이 그렇게 움직일 수 있죠? 완전 쩔어요. 저도 송판을 깨보고 싶어요. 이 다음에 오빠 같은 사람한테, 아니 오빠한테 시집 갈래요. 오빠, 사랑해요.

이런 식이었을까? 1966년, tv 드라마, <그린 호넷> 시리즈에 출연한 이소룡을 보고 비키라는 소녀가 보낸 편지가.

여기에 대한 이소룡의 답장은─내 편한대로만 인용하자면─이랬다. “만약 뭔가를 깨고 싶다면, 망치를 사용하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