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1013

1.
서점에 가서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어떤 책을 찾다 찾다 포기하고 고객용 PC에서 검색을 했더니 재고가 있기는 있는데 어디 있는지 자기는 모르니 직원에게 문의하시라고 친절하게 알려준다.

직원에게 문의하면 된다는 걸 누가 모르나. 그거 안 하려고 여태 돌아다니고 지루하게 PC 앞에 줄 서서 기다렸다가 검색까지 했는데 이게 뭐람. 직원은 어디 있나? 아, 저기 있군. 저기 직원 둘이 머리를 맡대고 지구방위대책을 세우고 있네. 용기를 내야지.

저기요. 책 하나 찾아주시겠습니까?
제목이 뭐죠?

한 직원이 묻는다. 나는 제목을 알려준다. 그 직원은 직원용 검색 PC에 책 제목을 넣는다. 옆에서 보니 오타가 나서 엉뚱한 책들만 주르륵 뜬다. 고객용 PC와는 다른 화면이다. 나는 오타가 났다고 알려준다. 이제야 제대로 뜬다. 곁을 지키고 있던 다른 직원이 아, 이 책 내가 아까 꽂으려다 말았는데…, 하더니 두어걸음 걸어서 바로 집어다 준다.

맞다. 이거다. 동지섣달 꽃 본듯이 반갑다. 무슨 책이 길래 이렇게 유난을 떠는 지는 말해주지 않겠다.

2.
덤으로 아들녀석 주려고 월간 <<무선모형>>과 월간 <<라디오 컨트롤>>을 샀다. A4 용지 대충 잘라서 스카치 테이프나 덕지덕지 붙여대는 쥐방울 만한 놈이 저런 심오한 책 본다고 무얼 알겠느냐만.
이런 것도 다 보상심리다.


─ Unidentified Creeping Object, 2007, 쥐방울 만한 놈 作

오늘의 문장

“그것[익살]은 인간에 대한 저의 최후의 구애였습니다. 저는 인간을 극도로 두려워하면서도 아무래도 인간을 단념할 수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해서 저는 익살이라는 가는 실로 간신히 인간과 연결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겉으로는 늘 웃는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필사적인, 그야말로 천 번에 한 번밖에 안 되는 기회를 잡아야 하는 위기일발의 진땀 나는 서비스 였습니다.”

─ 다자이 오사무(지음), 김춘미(옮김), <<인간 실격>>, 민음사, 2004, pp17-18

가련한 청춘. 저렇게 살다가 저렇게 죽었다.

을지로에서

가령, 공고 같은 데를 나와
아니, 어쩌면 언감생심 고등학교는 근처도 못가보고
그러니까, 내 나이 열일곱 살 쯤에
청계천이나 을지로 어디 쯤에 있는 철공소나 전파사나 공구상 같은 데 취직해서
밥 벌어 먹으면서
지나가는 교복 입은 또래들을 보면 부러워하다가
특히나 여학생들을 보면 마음이 설레리다가 저리다가 쓰라리다가
나이 차서 군대 가고
제대 하고 딱히 할 일도 없고 갈 곳도 없어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다시
그곳에 깃들어
이 나이 먹도록 살았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부질 없는 생각이나 하는 것이다, 나는.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면서.
쇠조각에 구멍 네 개 뚫는 공임이 5000원이면 조금 비싸다 생각하면서.

가을비가 오락가락하는 을지로에서.

확 끊어 버려야지

“나우 아빠, 복도에 나가서 담배 핀 적 있어?”
늘 웃음 띤 얼굴을 하고 있는 경비 아저씨가 다가와 조심스레 묻는다.
“아뇨. 베란다에서 피우는데…”
“그렇군. 위층에서 담배 냄새 난다고 뭐라 그래. 밖에 나와서 피워.”
“그래요? 알았어요. 안 피울게요. 안 그래도 끊으려는 참입니다. 가족들도 난리고.”
“그래. 끊어. 돈 버리고 몸 버리고…”
“네.”

연양갱 좋아하는 사람들은 보름달 복 많이 받으시오. 그리고 연양갱 싫어하는 사람들은 냉큼 저리 가시오.

나는 연양갱을 좋아 한다. 초코렛과 연양갱 가운데 하나를 골라야 하는 상황이라면 나는 주저없이 연양갱을 선택한다. 연양갱 따위는 거들떠도 보지도 않는 저 입맛 고고하신 분들의 치하가 돼버린 삭막한 이 세상에서 어쩌다 연양갱을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면 그리 반가울 수가 없다. 고향 까마귀는 저리가라다.

요즘 아이들은 대체로 연양갱을 좋아하지 않는다. 우리집 아이들도 얼마 전까지는 그랬다. 그리하여 우리집에 생기는 양갱은 언제나 내 독차지였는데 이제는 방심할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강력한 경쟁자가 생긴 까닭이다. 연양갱 마저 꼭꼭 숨겨 놓아야 하는 세상이라니! 확실히 살기 힘들어 지고 있다. 이 경쟁자가 오늘 아침 크라운 웰빙 연양갱을 까먹으며 이렇게 말했다.

“아빠, 밤 연양갱이나 웰빙 연양갱이나 그냥 연양갱이나 맛은 다 똑같애.”

나는 앞에 뭐가 붙지 않은, 그러니까 그야말로 순수, 참, 오리지널, 오쏘독스, 재래식 연양갱 만을 좋아하며 앞에 뭐가 붙은 퓨전스타일에는 쉽게 손이 나가지 아니 하는데 이 경쟁자는 뒤에 연양갱만 붙으면 앞에 뭐가 붙든 상관없는 모양이다. 조심해야 겠다. 저게 내 연양갱 다 먹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