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고양이

따위: 어제 밤에 내 그대를 위해 시 한 수 지었소.
싸모님: 읊어봐.
따위: 한밤중에 목이 말라 안방 문을 열어보니/ 싸모님 앞에 고양이가 고독에 절여져 있네/ 싸모님이 고양이를 절여놓고 주무시는구나
싸모님: (웃음)
따위: 나는 내일 아침에는 고양이 고독구이를 먹을 수 있네.
싸모님: 말만 들어도 끔찍하다.
따위: 어때?
싸모님: 훌륭해. 근데 목이 마른데 왜 안방문을 열어? 냉장고를 열어야지.
따위: 역시 예리하셔. 그게 바로 이 시의 감상 포인트야. 부조리한 세상에는 부조리하게 대응해야 하는 거거덩.

벌레 먹은 코리아

“아, 어저께만 하더라도 난 춤을 추며 웃고 있었는데! 정말 어쩌면 나는 이렇게도 바보일까!”
테스는 혼자 중얼거렸다.
“그건 우리들이 벌레 먹은 별에서 살고 있어서일 거야. 싱싱한 별에서 살고 있다면 오늘처럼 슬픈 일은 없을거야. 응, 누나?”
눈물을 글썽이면서 에이브러햄이 중얼거렸다.

─ 토머스 하디 (지음), 이호규(옮김), <<테스>, 혜원출판사, 1991(초판), 2003(11쇄), p34

“Why, I danced and laughed only yesterday!” she went on to herself. “To think that I was such a fool!”
“‘Tis because we be on a blighted star, and not a sound one, isn’t it, Tess?” murmured Abraham through his tears.

“생각대로 T”

“이 방은 갈수록 홀아비 냄새가 심하네.”

생각대로 꽝!이된 삼성 특검 수사 결과에 대한 대응책을 논의하러 들어온 아내,
공권력에 대한 불복종의 표시로 감기 걸린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말자는 중차대한 결론을 내고
방을 나가며 한마디 한다.

맞다. 안 씻은 지도, 각방 쓴 지도 너무 오래 되었다.
홀아비 생활 청산하고, 합방해야겠다.
“생각대로 T”라지만 과연 생각대로 될까?

죽음 소풍

언젠가 내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저주처럼 벚꽃 흩날리는 봄이 오면
나는 이렇게 중얼거리며 슬퍼하게 되리라.

엄마, 꽃구경 가요.

로드킬을 다룬 영화, <어느 날 그 길에서>를 봤다. 찬사는 아껴두고 몇 가지 흠을 잡는다. 첫째, 편집을 다시 하면 좋겠다. 내용에 비해 너무 길고 자주 질질 늘어진다. 같은 그림을 되풀이 해서 보여주는 것도 눈에 거슬린다. 이것저것 걷어내고 압축하면 지금보다 단단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자막이 유치하다. 워딩wording을 다시 했으면 좋겠다. 주제에 이런 말할 처지는 아니다만 감독이 글쓰기 훈련이 덜 되어 있는 것 같다.

아무튼 이러저러한 단점에도 불구하고 좋은 영화다. 인간, 죄 많은 족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