덤덤

우리집에는 고양이와 아내와 첫째 아이와 둘째 아이와 셋째 아이와 내가 산다 고양이와 아내와 첫째 아이와 둘째 아이와 셋째 아이는 안방에서 잔다 나는 내방에서 혼자 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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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생명 하나를 집에 들였다.

그리고 백과사전에서 고양이 항목을 찾아보았다. 눈이 번쩍 뜨이는 문장이 있어 옮겨 둔다.

“갓 태어난 새끼의 몸무게는 보통 약 100g이다. 어미는 새끼들을 핥아 새끼의 몸을 말리고 호흡과 다른 생체 기능을 자극한다. 다른 포유류와 마찬가지로 고양이도 젖을 먹여 새끼를 기른다. 갓 태어난 새끼는 귀와 눈이 닫혀 있기 때문에 듣거나 볼 수 없다. 따라서 어미가 새끼를 먹이고 씻기며 보호해주어야 한다. 수고양이는 새끼를 돌보는 데 하는 일이 없다.

고양이로 태어날 걸 그랬다.

바이스

네 거는 이거보다 좀 작지?” 아버지가 말씀하신다.
“어, 그거 뭐예요? 어디서 났어요? 멋지다.” 내가 말한다.
“응, 청계천에서 하나 샀어. 5천원에.”
“어디 좀 봐요.” 나는 바이스를 넘겨받아 이리저리 살핀다.
새거다. 멋지다. 나는 군침을 꿀꺽 삼킨다.
“원래 8천원 달라는 걸 깍아서 5천원에 샀다.” 아버지가 자랑스럽게 말씀하신다.
새거다. 멋지다. 게다가 360도 회전도 된다. 나는 군침을 꿀꺽 삼킨다.
“너, 가져라.” 아버지가 말씀하신다. 자랑을 하려고 꺼내셨다가 마지못해 그러시는 걸까, 아니면 처음부터 나주려고 꺼내신 걸까.
“정말요?” 나는 바이스를 냉큼 챙기며 여쭌다. 그리고 지갑을 꺼내 1만원짜리 한장을 아버지 주머니에 넣는다.
“됐다.” 아버지 사양하신다.
“받으세요. 5천원에 사셔서 만원에 파셨으니 완전히 두 배 장사네요.”
새거다. 멋지다. 이런 대화가 오고가는 동안 어머니는 염색중이시다. 스물한 살, 이제는 처녀가 다 된 조카가 미용사다. 조카는 군에 간 남자친구를 차버리고 밥 사주고 돈 내는 뒷모습이 멋진 새 남자친구를 사귀는 중이란다.

오늘 밤에도 이 바이스가 망막에 스치운다.

나무늘보 할머니

나무늘보 할머니 마을버스에 타신다. 기사하게 말씀하신다. 정형외과 앞에 세워달라고, 다리가 아프시다고. “지정된 정류장 이외에는 세워드릴 수 없습니다.” 기사가 말한다. 나무늘보 할머니 절망하신다. “잘 못 세우면 벌금 물어요, 할머니.” 기사가 말한다. 나무늘보 할머니 자리에 앉으신다. “제 동료도 두 번이나 벌금을 냈어요. 60만원이에요. 한 번에 30만원씩.” 기사가 거울을 보며 말한다. 나무늘보 할머니 아무 말씀이 없으시다. “세워드리면 주민들이 신고를 해요. 그것도 비디오 카메라로 찍어가지고. 빼도 박도 못해요.” 기사가 말한다. 나무늘보 할머니 아무 말씀이 없으시다. 버스가 정형외과 앞을 지나 정류소 앞에 멎는다. 나무늘보 할머니 하차하신다. 승객들 나무늘보 할머니를 본다. 버스가 출발한다. 버스 안이 조용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