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를 알 수 없는 몇 개의 문장이 투덜거리며 지나간 지난 밤 지난 밤의 꿈 그러나 가는 문장을 어찌 붙잡겠는가 나는 감정이 메모지야 살짝만 스쳐도 두고두고 기억하지 까치 두 마리 맨땅을 쪼고 있다 거기 뭐 먹을 만한 게 있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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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없이 착란에 가까운 정신
소설집 하나 사놓고 야금야금 읽고 있다. 맛나다. 무슨 책인지는 말해주지 않겠다. 머리를 잘랐다. 6개월 이상 자란 머리카락이 뭉텅뭉텅 잘려나가는 동안 미용실 원장과 자녀교육에 대해서 얘길 나누었다. 덧없다. 아내가 처녀 적에 직장생활하며 받은, 내가 강가를 누비던 삼천리 자전거를 누가 훔쳐갔다. 잃어버려도 아깝지 않을 정도로 고물이었는데 막상 잃어버리니 아깝다. 관리사무실에 가서 CCTV에 기록된 영상이라도 확인해 보려다가 귀찮아서 참았다. 막내는 가벼운 감기에 걸렸고 맏딸은 코피를 쏟았다. 엽이는 ‘밤낮으로 노력하였습니다’를 ‘밤났으로 로력하였습니다’로 썼다. 아내는 문상하러 가고, 아이들을 재웠다. 재우기 전에 아르키메데스가 3.141592어쩌구저쩌구, 하는 숫자를 어떻게 규명해냈는지 책을 읽어주었다. “아빠, 수학 얘기 또 해줘.” 나우가 말했다. “자라.” 내가 말했다. 아니다. 이것은 사실과 다르다. 내 헤어스타일을 본 아내가 웃었다. “컨트리 스타일?” 내가 물었다. “노, 어번 스타일!” 아내가 대답했다.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는 앞에서 언급한 책이 아니다. 아버지의 버어니어 캘리퍼스와 미제 제네릭 아스피린 약병과 받아야할 물품의 송장번호가 적혀 있는 메모지가 놓여 있는 책상……그리고 북스탠드에 기대 서서 도통 넘어갈 줄 모르는 페이지, 페이지들.
닭이 내게로 왔다
대학 때 정현종 시인에게서 수업을 들었다. 그 때 파블로 네루다를 읽었다. 거기에 “시가 내게로 왔다”는 구절이 있었다. 그러나 시는 내게로 오지 않았다.
그로부터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어제 밤 꿈에 닭이 내게로 왔다. 정확히는 닭이 내게로 왔다는 문장이 내게로 왔다.
닭이 무슨 죄가 있겠나 싶어, 개가 내게로 왔다고 바꾸었다가, 개는 또 무슨 죄가 있겠나 싶어, 닭도 개도 아닌, 물론 시는 절대로 아닌, 뭔가 격렬하면서도 치졸하면서도 코믹하면서도 쓸쓸한 의미를 가진, 일음절의 낱말을 하루 종일 찾았으나 허사였다.
우우, 시는 내게로 오지 않고 닭이 내게로 왔다. 그나마 닭이라도 온 게 어디냐.
오늘 밤에도 후라이드 치킨이 바람에 스치운다.
부모는 죽을 때까지 별 수 없어.
여보세요?
이서방이야?
예. 안녕하세요.
애들은?
할머니네 갔어요. 어제도 거기서 잤는데 하루 더 자겠다고 그래서요.
고생이 많으시겠네.
고생은요 무슨…
아까 어미한테는 얘기 했는데, 내일 저녁에 올 수 있나?
예. 내일은 별 일 없습니다.
그럼 저녁 때 와. 내 자네 올 수 있는지 그거 확인할라구 전화 했어.
아, 예에. 그런데 무슨 날이예요?
아니, 그냥 저녁이나 먹자구.
네에.
아들네만 데려다 먹이려니 또 그쪽이 걸려가지고 말이야. 부모는 죽을 때까지 별 수 없어.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