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학년 새학기

맏딸은 이제 6학년이다. 돌 전에 걷기 시작해서 돌잔치날 부페를 휘젓고 다녔다. (어머니가 옛말에 자기 돌잔치날 떡 돌리고 다닌다더니 딱 그꼴이네 하셨던 기억이 있다.) 얼마 전부터 귀에 이어폰 끼고 산다. A4 용지를 수북히 쌓아놓고 밤마다 잠자리에 엎드려 뭔가를 그린다. 슬슬 시작인 것이다. 모르는 사람 눈에는 보이쉬하게 보이는 모양이다. 명랑하고 사교적이고 적극적이다. 앞으로 43분에서, 뒤로 17분까지 그네를 타고 허공을 가를 줄 안다. 제 어미 키를 추월할 날이 머지 않았다. 태권도 3품.

둘째는 이제 4학년이다. 위로 누나한테, 아래로 동생한테 치여 산다. 요즘 들어 부쩍 언어의 의미와 표현의 불일치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이 예민함은 주로 말꼬리 잡기의 형태로 나타난다. 언어는 불완전한 것이며 대충대충 쓰는 거라고,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 듣는 거라고 틈날 때마다 세뇌시키고 있다. 닮을 걸 닮아야지. 미술에 소질이 있고 만들기에 재주가 있다. 그 방면으로 밀어줄까 고민중. 태권도 2품.

막내는 이제 2학년이다. 아무한테나 척척 안기는 스타일. 이래저래 맑고 천진하다. 1학년 담임은 매사에 질문이 많다, 고 생활통지표에 적어 보냈다. 언어 감각이 좋아 대가리에 든 거 없이 입만 나불거리지 않도록 키우려면 잘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중. 매운 음식을 유난히 못먹어 라면도 별도로 순/하/게 끓여줘야 한다. 누나 형아는 ‘진즉에’ 수영을 가르쳤는데 이 녀석만 아직이라 올해는 수영 강습 받게 할 예정. 태권도 2품.

위 세 개 문단을 요약하면 이렇다. 맏딸은 이제 6학년이다. 둘째는 이제 4학년이다. 막내는 이제 2학년이다. 첩첩산중이다.

이러고들 있다


놀이터에 나가 비비탄을 잔뜩 주워다 목욕시켜 물기 닦는 중.
500ml 페트병 반을 거뜬히 채우는 양. 부모가 안 사주니 자급자족.

이러고들 있다.

형: 우리 또 ‘숨꼭’ 할까?
동생: 그래.
형: 이번엔 니 이불로 하자.
동생: 좋아. 하지만 내 이불한테 허튼 짓 하면 안 돼!
형: 알았어.

네, 말씀드리는 순간 형 선수 이불을 뒤집어 쓰고 하나부터 서른까지 세기 시작합니다. 동생 선수는 숨을 곳을 찾아 재빨리, 그러나 조용히 움직입니다.

이러고들 있다

아이들이 집안에서 숨박꼭질을 한다. 숨을 데도 없는 것 같은데 지들끼리는 제법 재미 있게 논다. 초코파이를 먹다보면 부스러기를 흘리게 마련이고, 숨박꼭질을 하다보면 자연 쿵쾅거리는 소리가 나게 마련이다. 아래층에 고3이 사는데 쿵쾅거리다니. 아이들이 쿵쾅거릴 때마다 내 심장도 쿵쾅거린다. 나는 꼰대답게 주의를 준다. “숨박꼭질 하는 건 좋은데 쿵쾅거리지는 말어.” 그러면서 내 말이 숨 쉬지 말고 뛰어 놀라는 말과 뭐가 다른 지 잠시 생각해 본다. “네.” 대답 하나는 기가 막히게 하는 막대가 대답을 한다. 그러나 달라진 건 없다. 아이들은 여전히 쿵쾅거리며 숨박꼭질을 하고 그때마다 내 심장도 여전히 쿵쾅거린다. 업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