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카피

졸업식은 어수선했다. 아이들은 자기 자리에 아무렇게나 앉아 있었고 어른들은 교실 뒤쪽에 아무렇게나 서 있었다. 교실 앞 모니터에서는 학교 어디선가 벌어지고 있는 행사가 중계되었다. 누군가 송사를 읽었고 누군가 답사를 읽었다. 누군가 바이올린을 연주했고 몇몇 남학생들이 나와 “내 사랑 오 마이 러브 투 유”를 불렀다.

방송으로 중계되는 행사가 끝나고 각 교실에서는 2부 행사가 이어졌다. 담임 선생은 학생들을 한 명 한 명 호명해서 졸업장과 앨범과 롤링페이퍼 따위를 나누어 주고 악수를 청했다. 학부모들은 대개는 핸드폰으로, 더러는 캠코더로 그 모습을 찍었다. 마지막으로 담임은 ‘지지자 불여호지자 호지자 불여낙지자’라면서 제자들에게 당부의 말을 했다. ‘무릎팍 도사’ 동영상도 하나 보여주었다.

끝으로 어느 학생이 편집한 동영상을 보게 되었다. 반 친구들 사진을 한 장 한 장 띄우고 거기에 그 아이와 관계된 글이 짧게 짧게 지나가는 평범한 영상이었다. 그걸 보며 아이들은 웃었다. 동영상 끝부분에 ‘안녕 친구들’, ‘안녕 3학년 9반’하는 문구가 떠올랐다. 아쉽지만 이제 졸업인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에 ‘안녕 중학교’라는 말이 보였다. 그 순간 아이들은 아, 하며 탄식을 했고, 나는 뭔가 뭉클했다.

졸업식이 끝나고 운동장에 나와 사진을 찍는 아이를 기다렸다가 중국집에 가서 짜장면을 먹었다.

어떤 소감

2박3일 동안의 수련회에 다녀온 막내는 수련회가 어떠했느냐는 내 질문에 “규율이 엄격했어”라고만 대답했다.

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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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먹은 꼭 순정 주먹이 아니어도 좋다.
색도 구리고 모양도 구리지만
파워는 구리지 않다.
조막손, 이제부터 이게 내 주먹이다.
이건 내 싸움이다.

아무나 홍길동이 되는 게 아니다

자식놈이 하두 지 엄마 편만 들고 하늘과 같으신 본 아버님의 말씀은 바나나 껍질 보듯 여기는 지라, 애비된 자로서 눈물을 머금고 호부호형을 금지할 수 밖에 없었는데…

“너는 앞으로 아빠한테 아빠라고 부르지도 말거라.”

그러자 녀석은 비탄에 잠기거나 길동이처럼 가출할 결심을 하긴는 커녕 거 뭐 어렵냐는 듯이 이렇게 대꾸했다.

“네. 파더.”

나는 쑥떡을 주었는데 너는 왜 개떡이라 하는가

관리자 메뉴에 로그인 했다가 드래프트가 100여개가 쌓여 있는 걸 발견하고 하나 눌러 봤더니 다음과 같은 게 나왔다. 2009년 9월 22일의 글이다. 그때 이걸 적어 놓고 왜 포스팅을 하지 않았을까.

*****

우리의 떼멍이, A4용지와 4B연필을 들고 거실 바닥에 없드려 창작 활동을 하느라 여념이 없다. 이 때 아빠의 목소리가 들린다. “떼멍이 모르게 우리끼리 사과 다 먹자.” 우리의 떼멍이 어라, 이게 뭔 소리래, 하면서 돌아보니 아빠가 누나 형아와 함께 사과를 먹고 있다. 자기들끼리. 쑥떡쑥떡거리면서. 우리의 떼멍이, 배신감을 느낀다. 어떻게 할까 고민한다. 치사한 세상이다. 난 누굴 믿고 살아야 하나. 일단 삐쳤다는 제스처를 취하기로 한다.

아빠가 달래주면 못이기는 척 사과를 먹을 것이고 달래주지 않으면 진짜로 삐져버릴 것이다. 그땐 각오하는 게 좋을 것이다. 그래도 아빠는 아빠다. “야, 너희들 사과 먹지마. 이거 떼멍이 혼자 다 먹어. 아이쿠, 이게 제일 크네.” 떼멍이, 일단 사과는 받아들었지만 분이 풀리지 않는다. 나만 빼고 지들끼리 사과를 먹으려 하다니, 앞으로는 적들의 동태를 잘 감시해야 겠다, 오늘 밤에도 사과가 바람에 스치운다, 고 생각한다.

아빠가 묻는다. “떼멍아, 아빠가 정말로 너 몰래 우리끼리 사과를 다 먹으려고 했으면 우리끼리 사과 먹자는 말을 네가 들을 수 있게 했을까, 아니면 들을 수 없게 했을까?” 떼멍이 잠시 생각하더니 말한다. “그야 들을 수 없게 했겠지.” “그럼 왜 아빠가 큰 소리로 말했을까?” 떼멍이, 잠시 생각한다. 잘 모르겠다. 사과는 맛있다.

아빠가 말한다. “너 사과 먹으란 얘기를 재밌게 하느라고 그런 거야. 그러니까 아빠가 떼멍이 모르게 우리끼리 사과 다 먹자고 말하는 소리가 들리면 삐질 것이 아니라 아 울 아빠가 나보구 사과 먹으라고 하시는구나, 역시 피는 물보다 진하구나, 내가 엄마 복은 없지만 그나마 아빠 복은 있구나, 하면서 마치 아빠랑 누나랑 형아랑 몰래 먹는 것을 네가 발견했다는 듯이, 한번만 더 그러면 정말 재미 없을 줄 알라는 듯이 연기를 하면 되는 거야. 그리고 연기는 천연덕스렙게 해야 하는 거야. 내 개떡이 무슨 쑥떡인지 알겠느냐?”

떼멍이가 생각한다. 아, 그게 그렇구나. 하지만 아빠 개떡은 늘 너무 어려워. 그냥 사과 먹으라고 하면 좀 좋아.

Last edited on September 22, 2009 at 9:55 p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