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는 팽이는 왜 쓰러지지 않는가

6살 아들 녀석이 물어온 질문인데 선뜻 대답을 해줄 수 없었다.

도움을 얻을까해서 인터넷 검색을 해봤는데 대략 난감.

각운동량, 세차운동, 회전운동량, 관성모멘트, 각속도, 구심가속도, 구심력, 원심력, 토크 …

어린이는 빨대다

언제 기회 있으면 우리집 아이들에게 어린이가 뭐지, 라고 물어보라. 열이면 열 빨대, 라고 대답할 것이다. (암만 그래도 열은 좀 많다.) 어린이를 언필칭(고색창연쿠나) 빨대라고 대답하는 저 얼토당토 않은 은유는 물론 내가 세뇌 및 주입한 것이다. 늘 그렇듯 고상한 의미 따위는 없다. 그냥 어린이는 빨대처럼 모든 지식을 빨아들여야 한다는 아빠된 자의 강요를 아이들 눈높이에 맞추어 고상하게 표현한 것 뿐이다. 묻겠다. 어린이는 뭐지?

내 그럴 줄 알았다. 당신, 분명히 빨대,라고 대답했으리라. 떼끼. 그럴 때를 대비해서 나는 다른 대답을 준비해 두었다. 그게 뭐냐구? 기다려보라.

아무튼 우리집 아이들에게 어린이로서의 자부심과 지식습득에 대한 막대한, 그러니까 내 말은 타는 듯한, 갈망을 심어준 것 까지는 좋았는데 오늘 드디어 일이 터졌다. 늘 그렇듯 별 일 아니다.

밤 열시가 넘어서 ‘우’가 곳간을 뒤져 노란 귤방울이 방울방울 맺혀 있는 비닐봉다리(안다, 나도 봉지라고 해야한다는 거)를 찾아왔다. 맛있는 걸 보면 우리는 이렇게 말한다. 뒷다리 한 개만! 뒷다리 한 개만! 영화 센과 치히로의 해방불명에 나오는 대사다.

귤방울을 보자 침방울이 솓아난 나는 득달같이 달려가 뒷다리 한 개만!을 외쳤다. 얼마나 빨랐느냐 하면 예전에 다방구 놀이할 때 붙잡혀서 거점에 줄줄이 매달려 있는 친구들을 구하기 위해 잽싸게 달려가 ‘야도’를 외치던 그 정도 속도였다. 그리고 ‘우’에게는 두 개만 먹으라 말했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 많이 먹으면 안좋다 말하면서.

나는 세 개를 꺼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바로 태클이 들어왔다. 아빠만 왜 세 개 먹어?

야, 이눔아. 봐라. 아빠 팔뚝이 더 굵지? 이 굵은 팔뚝을 들어올리려면 에너지가 더 많이 필요해. 그리고 아빠 코 봐. 크지? 이 코를 유지보수할래도 에너지가 더 많이 필요해. 그래서 아빠가 더 많이 먹어야 해. (김현의 <<행복한 책읽기>>에 이런 구절이 있다. “권위주의는 동어반복이다. 나는 권위 있느니까 권위 있다!”)

그러자 ‘우’가 눈물이 그렇그렁한 눈으로 이렇게 말하는 거디었던 거디었다. 나, 바로 귤 하나 더 꺼내 줄 수밖에 없었다. 그 말은 이랬다.

나는 어린이야. 어린이는 쑥쑥 자라야하니까 어른보다 많이 먹어야한단 말이에욧!

어린이, 빨대 맞다. 귤도 잘도 쪽쪽 빨아 먹는다. 그리하여 내 바야흐로 마침내 드디어 입 아프게 다시 묻는다. 어린이는 뭐지?

내 그럴 줄 알았다. 당신, 분명히 빨대,라고 대답했으리라. 떼끼. 그럴 때를 대비해서 나는 다른 대답을 준비해 두었다. 그게 뭐냐구? 글쎄 기다려보라.

선생님은 몇 번이고 ‘물’이라고 썼어요. …… 헬렌은 드디어 알게 되었어요.

어느 화창한 봄날이었어요.
선생님은 헬렌에게 컵을 들려 펌프가 있는 뜰로 나갔습니다.
헬렌의 손에 차가운 물이 쏟아졌어요.
깜짝 놀란 헬렌은 컵을 떨어뜨렸어요.
그 순간, 선생님은 헬렌의 손바닥에 ‘물’이라고 썼어요.
선생님은 몇 번이고 ‘물’이라고 썼어요.
‘네 손에 닿는 것이 무엇인지 알겠니? 물, 물이란다.’
선생님은 *애원하듯 자꾸자꾸 썼어요.
헬렌도 선생님의 손에 ‘물, 물’이라고 서툴게 썼어요.
헬렌은 천천히 손을 뻗어 물을 느껴 보았어요.
헬렌의 보이지 않는 눈이 반짝 빛났습니다.
‘물, 물, 물 … !
아, 이것이 물이구나!
이 차가운 것이 물이다!’
헬렌은 드디어 알게 되었어요.
세상 모든 것에는 제각기 이름이 있다는 것을 말이에요.
“헬렌, 드디어 **깨달았구나!”
헬렌은 손에 닿는 모든 것의 이름을 알고 싶어했어요.
그럴 때마다 선생님의 손등을 톡톡 쳤습니다.
헬렌은 동생이 ‘아기’라는 것을 알았어요.
‘인형’이라는 글자도 알았어요.
자기 이름이 ‘헬렌’이라는 것도 알았어요.

footnote:
*애원하다: 슬픈 소리로 간절히 바라다.
**깨닫다: 생각하던 끝에 알아내다.

─ 김종상(글), 박지숙(그림), <<헬렌 켈러>>, 한교, 1997

덧붙일 말은 나중에…

오후만 있던 일요일

1.
일요일, 온 가족이 빈둥댔는데 드디어는 마음이 또 근질근질 해진 우가 산에 가자고 졸랐다. 날도 쌀쌀한데다 귀찮기도 해서 이 핑계를 대서 결국 우의 마음을 돌렸다. 한 숨 자고 났는데 아직도 마음이 근질근질한 우가 이번에는 공원에라도 가자고 졸랐다. 이번에는 저 핑계를 대서 역시 가지 않았다. 녀석은 결국 다 포기하고 저 혼자 나가서 줄넘기를 하고 들어오더니 얼마 후 그림 반 글 반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어깨 너머로 보니 이렇게 썼다. “밖에 나가서 줄넘기를 했다. 재미 있었다.” 순간 이번에는 내 마음이 마구 간지러워졌다. 산에 다녀왔으면 틀림없이 이렇게 썼으리라. “아빠와 산에 갔었다. 재미 있었다.”

2.
언이가 프라하의 연인을 보다가 TV 모니터에 가까이 가더니 전도연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한 마디 했다. “아빠, 얘 정말 예쁘다.” 나는 살짝 어이가 없었다. 아내에게 말했더니 아내가 기어코 아이를 시험에 들게 했다 . “어니야, 엄마보다 더 이쁘든?” 아이는 엄마 눈치를 살짝 보더니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내는 자식 새끼 키워봐야 소용없다고 말하며 분개하더니 이렇게 덧붙였다. “짜식, 눈은 높아 가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