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식탁에서

아빠, 나 진지하게 물어볼 게 있는데…
뭐?
나 정말 입양된 애 아니지?
응. 아니야. 그런 걸 왜 물어?
……
왜 묻냐구.
응, 우리 중에 나만 돌잔치 사진이 없고, 누나랑 형아는 둘이 친한데 나만 외로워.
아들아, 우리 막내들은 아주 아주 특별한 존재들란다. 고독할 수밖에 없는 저주받은 운명을 타고 났지. 하지만 너무 외로워 마라. 아빠랑 너랑은 같은 편이고, 더군다나 네 엄마도 우리편이다. 저 둘은, 그러니까 네 형아랑 누나는 막내들을 절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가엾은 존재들이란다. 자, 아들아, 잔을 들어라. 한 잔은 우리 막내들만의 재능을 위해, 또 한 잔은 막내들과 더불어 하루하루 고통과 인내와 절망과 좌절 속에 살아야 하는, 저 막내로 태어나지 못한 나머지 모든 종족들의 멘탈붕괴 예방을 위해!

입을 크게 벌리세요, 이거 대략 좋지 않다. 아 소리를 내세요, 이거 많이 좋다.

용왕님이 크게 노하셨다, 자기 수라상에 올라갈 조기를 먹는다고. 하여 내 자식의 목구멍에 가시를 팍, 박아넣으셨다. 그것도 첫 술에. 바다의 왕이라는 양반이 하는 짓이 영 옹졸하시다. 나는 이제부터 서양의 포세이돈을 섬길 것이다. 묵호에 가서 조기를 잡아 산 채로 제물로 바칠 것이다.

녀석이 괴로워 하길래 입을 벌려 숟가락으로 혀를 누르고 들여다 보니 동굴 입구에 황금가시가 박혀 있었다. 나머지 조직원들을 동원하여 녀석의 사지를 포박한 연후에 핀셋을 넣어 뽑으려는데 녀석이 구역질을 하는 바람에 1차 시술에 실패했다. 나는 내가 화타가 아니라는 서글픈 현실을 자각하고 동네 산부인과 옆 이비인후과를 찾았다.

병원 가기 전에 인터넷으로 ‘목에 걸린 가시 빼는 법’을 검색해보니, 날 계란을 먹어라 가시도 술술 넘어간다, 아니다 식초를 마시면 가시가 녹는다 식초 맛있다, 아니다 김치를 씹지말고 오물거리다가 삼켜라 김치가 가시를 끌어안고 논개처럼 진주 남강으로 투신한다, 아니다 밥 한 숟가락을 삼켜라 뭐 든지 밥이 최고다, 이런 식의 민간요법이 나열돼 있었다. 나는 딸라빚을 내서라도 병원에 가라 응급실이라도 달려가라는 개중 마음에 드는 충고를 따르기로 했다.

의사의 단순한 시술과 내 화려한 의술의 외견상 차이점은 딱 하나, 녀석의 입을 벌리게 하는 방법 뿐이었다. 의사는 녀석에게 10초 동안만 아Ah 소리를 내라고 시킨 다음에, 파이프렌치를 입에 넣어 외견상 손쉽게 가시를 뽑았다.

녀석에게 입을 크게 벌리라고 말하는 대신에 아Ahhhhhh 소리를 내라고 시켰으면 나도 가시를 뽑을 수 있었을까? 안다, 무식한 소리라는 거. 식도에 구멍나면 감염의 위험이 있는데 이거 생각보다 시리어스한 상황이라는 것도 안다. 나는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 밥 먹다 말고 아이 데리고 허겁지겁 병원에 달려가야했단 말인가. 내 식은 밥은 누가 다시 덥혀주겠는가. 병원 대기실에서 <마당을 나온 암닭>을 읽은 것으로 위안을 삼을 뿐이다.

Ninjago

컴퓨터 하는 형아 옆에 앉은 3호. 갑자기 닌자고 노래를 부른다.

닌자고
닌 자 고
니인 자고
나안 컴퓨터 하고

형아가 한 마디 한다.

죽을래?

굿모닝

#목요일 아침

3호: (화장실 앞에서)엄마

(SE) 물소리

싸모님: …

3호: 엄마

(SE) 물소리

싸모님: …

3호: (볼륨을 높여서) 엄마아!

싸모님: 응?

3호: 오늘 목요일이야?

싸모님: 응

3호: 앗싸아. ‘특기적성’ 안 가도 된다아

아마 동생이 특기적성 간다고 꼭두새벽 8시부터 설쳐대니 형아가 점잖게 오늘 목요일이라고 말해주었을 것이다. 형아말은 일단 반쯤 찜쪄먹고 보는 동생은 사실 확인이 필요했을 것이고. 이제,

어제 저녁으로 시간을 달려보자.

#수요일 밤

3호: 아빠, 오늘이 무슨 요일이야?

따위: 웬스데이

3호: 목요일?

따위: 응

그러고 말았다. 지가 코가 없어 냄새를 못맡는 걸 내가 어떡… 그랬는데,

녀석이 요일을 내게 물었던 이유가, 거창하게 말해서, 자기주도적 스케줄 관리의 일환이었다는 걸 이해하게 된 지금은 써스데이 모닝. 그러니까 금요일 아침. 굿모닝 박정근.

딸기쨈은 없다

마냥 방목만 할 수는 없다는 부질 없는 생각에 길 잃은 어린 돼지들을 붙잡아 앉혀 놓고 아류 광대짓을 해가며 한 시간 동안 어느 먼 나라의 말을 가르치고 난 연후에 오매 따땃한 방바닥에 배깔고 엎드려 나 홀로 외로이 실로지즘 문제 하나를 붙잡고 지적 대결을 벌이며 쉬고 있는데 밖에서 아빠한테 물어봐 아빠는 알고 있을지도 몰라 하는 소리가 들리는 고로 오오 언제나 어디서나 오로지 육신의 양식만을 팔로잉하는 저 무지몽매한 돼지들이 이제 드디어 배움의 재미에 쵸큼 눈을 떠 뭔가 지적 혈투를 벌이고 있구나 나의 어린 돼지들이 과연 어떤 난제를 들고와 나를 괴롭힐 것인가 궁금해 하고 있는데 잠시 후 더 퍼스트 피그가 노크도 없이 방문을 열고 목을 디밀어 아빠 혹시 딸기쨈 어디 있는지 아세요 하고 묻는다. 딸기쨈, 먹고 죽을래도 없다.

***
혹시 모를 오해를 사지않기 위해서 덧붙여 둔다. 위에 나오는 실로지즘은 삼단논법이 아니라 트리즘이라는 게임의 한 모드로써, 일종의 그래픽 퍼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