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소를 사면 양파링이 들어 있다.”

너는 형아가 소중해, 양파링이 소중해?
그야 평소 때와 반쯤 굶었을 때가 다르지.
평소 때는 어떤데?
그야 형아가 소중하지.
반쯤 굶었을 땐?
그땐 양파링이 소중하지. 안 그러면 내가 식인종이 될지도 모르거든.

어느 소녀의 짝사랑 이야기

삑삑삑삑삑삑삑! 아들 녀석들과 더불어 쿡TV로 1박2일 보며 미션 실패를 안타까워 하고 있는데 현관문 번호키 누르는 소리가 난다. 삐리리리리리! 경고음이 뜬다. 고3 대우 중1 따님이 또 번호를 잘못 누르신 거다. 엄마 닮아 덤벙거리기는!

_안녕 아빠!
_오냐.
_아빠 나 오늘 버스에서 번호 따일 뻔 했다.
_버스에서 번호를 따다니. 그게 뭔 소리야?

나는 녀석이 친구들하고 놀다가 어느 멋진 놈한테 가서 번호 따는 벌칙이라도 걸린 줄 알았다.

_니가 가서 어떤 새끼 번호를 물어봤다구?
_아니, 아빠. 그게 아니고 내가 번호를 따일 뻔 했다구.
_그게 뭔 소리야. 자세히 좀 얘기해봐.
_응. 버스 타고 집에 오는데 거 뭐냐 불X고등학교 교복 입은 언니가 다가와서 내 번호를 물어보는 거야.

순간 가슴이 덜컥한다. 우리 딸이 드디어 동네 일진들 눈에 띄었구나. 어떤 놈이 우리 딸 찍어 놓고 여자애 시켜서 번호를 알아내려는 거구나. 이 노릇을 어쩐다. 아침저녁으로 등하교를 시켜야하나? 나는 녀석이 전화번호를 알려주었으면 어쩌나 걱정이 앞선다.

_그래서 어떻게 했어? 알려 줬어?
_아니. 저 여잔데요, 했더니 언니가 황당해 하면서 갔어.

녀석은 그렇게 말하고는 별일 아니라는 듯이 자기 방으로 가버린다. 나와 엽이와 언이가 빵 터져서 웃어댔더니 녀석이 다시 나와서 뭐가 그렇게 재미있냐고 묻는다.

_헐. 내 얘기 때문에 웃은 거였어?

하더니 다시 자기 방으로 간다. 남자로 오인 받는 게 한두 번도 아닌데 그게 뭐가 대수냐는 듯이.

하긴. 키 크지. 머리 짧지. 여드름 났지. 체육복 입고 있지. 남자 치고는 미소년 스타일이지. 소녀 마음 설레일 만도 했을 것이다.

p.s.
막내는 학교에서 자전거를 도둑맞았다.

다뭐시기가 대체 뭔뭐시기인가

며칠 전 일이다. 아침 식탁에서 하얀 쌀밥 한 삽과 갓 구운 총각김치를 입에 넣고 오물우물거리며 고3대우 중1딸이 ‘다뭐시기’가 뭐냐고 묻는다. ‘다뭐시기’가 뭔지 발음이 불분명하여 알아들을 수가 없다. 이때다. 꼰대정신을 발휘할 일주일에 한번 올까말까 한 기회다.

“잘 들어라. 전치사 with의 용법에 어떤 상황이 다른 일과 같이 일어나는 것을 표현하는 용법이 있다. 그런 걸 부대상황의 with라고 한다. 그 옛날에 일본놈님들이 그렇게 번역해서 말이 어렵다. 밥 먹을 때 찌개를 같이 먹지. 그때 먹는 찌개를 부대찌개라고 하는 거다.”

설명이 한창 중모리에서 중중모리로 넘어가려는데, 부대찌개 소리에 아내가 나를 흘겨본다. 안다. 나도 어이 없는 거. 그래도 무서워하면 안 된다. 뻔뻔해야 한다. 그래야 웃긴다. 아무려나 아버님 말씀 알기를 지나가는 꽹과리 소리로 아는 딸은 또 하얀 쌀밥 한 삽 떠서 입에 넣고 빨간 총각김치 집에 입에 넣고 우적우적 씹으며 ‘다뭐시기’가 뭐냐고 묻는다. 참아야 한다. 훌륭한 꼰대는 참을성이 많다.

“아빠가 여태 니가 물은 말에 대답을 하고 있었는데 너는 듣지도 않고 다시 묻는구나. 다시 설명할테니 잘 들어라.”

나는 앞의 말을 반복한다.

“전치사 with는 어떤 일이 동시에 벌어지는 상황을 표현하는 데도 쓴다. 그런 걸 부대 상황의 with라고 한다. 일테면 부대찌개는 밥 먹을 때 같이 먹는 찌개를 말하는 것이다. (아내가 또 쳐다본다.) 부대상황의 with를 설명할 때 드는 대표적인 예문이 있다. DO NOT SPEAK WITH YOUR MOUTH FULL. 그러니 입 안에 음식물 물고 말하지 말란 말이닷! 알겠느냐. 자, 네가 궁금한 게 뭔지 다시 물어보거라.”

딸은 아빠에 대한 절망감에 한숨을 푹 쉬며 입안에 있던 음식물을 삼키고는 다시 묻는다.

“‘다뭐시기’가 뭐예요?”

“뭐? 그게 무슨 말이야? 처음 듣는데…”

“영화 써니에 나왔는데. ‘다뭐시기’ 문학소녀라고…”

그러더니 딸은 밥 먹다가 말고 자기 방으로 달려가 두 트럭 분량의 영화 전단지를 가져와서 <써니>를 찾는다고 법석이다. 아내는, 밥 먹다가 말고, 자기가 찾아준다고 나서더니 찾으라는 <써니>는 안 찾고 다른 영화 전단지를 찬찬히 구경하고 계시다. 원빈이라도 있으면 품에 품을 기세다. 원빈, 너 나랑 싸우자.

지켜보던 딸이 답답한지 자기가 찾겠다고 나선다. 아내는 <최종병기 활> 전단을 빼어들고 물러난다. 나는 딸이 그 뜻을 궁금해하는 말이 대체 무슨 말인지 궁금해 미치겠다. 드디어 찾던 걸 찾은 딸이 내 앞에 문제의 전단에서 7공주(6공주인가?) 가운데 한 명을 가리키며 말한다.

“얘가 다굿발 문학소녀래. 다굿발이 뭐냐고?”

“다끝발? 다굿빨? 대구빨? 다구빨? 뭔지 모르겠다. 사전 찾아봐라.”

그리하여 뭐야, 자기도 모르면서 아는 척은, 하고 속으로 본 꼰대를 향하여 무한 툴툴 거렸을 딸이 다뭐시긴지 다거시긴지 다끝빨인지를 검색하러 간 사이, 혹시나 싶어 아이폰 검색창에 /다구/까지 쳤더니 /다구빨/이 추천 검색어로 뜬다. 별거 아니었다.

장마비 내리는 일요일

(전략)

언: 난 빵점 맞은 건 없어. 하지만 빵점 맞는 것도 재능이야.

(후략)

오호, 그러셔? 미안하다. 그런 재능을 물려주질 못해서.

*****
요점 정리하는 과정 자체가 공부이기 때문에 물고기에도 중금속이 남아 있을 수 있어, 라고 방금 내가 말했다고 아들녀석이 킬킬 거렸다. 그러자 나머지 두 놈도 좋다고 웃어댔다.

변명 아닌 변명을 하자면 기실 내 머리 속에는 녀석들의 질문에 답하는 두 문장이 동시에, 그러니까 소위 대위법적으루다가 떠올랐던 것 뿐이다. 나는 하나인데 세 놈이 동시에 질문을 해댈 때는 저런 정신분열적 사고가 아니면 대처가 안 된다는 말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