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뭐…

아들은 친구 생일날을 기념하여 영화를 보고 싶어했다. 누구 누구 가느냐, 몇 명이 가느냐, 뭐 볼거냐. 부모된 자로서 아내와 나는 질문이 많았다. 아들은 건성으로 대답했다.

관람료는? 아빠한테 평일 무료 티켓 있다매? 그건 한 명밖에 안 되는데? 그래? 응! 뭐 어떻게 되겠지.

이건 뭐 예산 확보도 안 하고 이벤트를 추진하는군. 여기까지가 오늘 아침 상황이다.

다저녁이다. 전화가 온다. 아들이다.

아빠 언제 와? 그건 왜? 응 내일 친구들이랑 영화 보러 갈 건데, 원래는 나까지 셋이 가려고 헀는데 한 애가 시간이 안 된대서 둘이만 갈거야? 그래? 응! 뭐 본다구? 그린랜턴! 몇 시에? 15시 10분! 표는? 아빠가 사줘야할 것 같은데…

내 너 그럴 줄 알았다. 좋다. 끼워 팔아야지.

그럼 언이도 데려가. 알았어! 팝콘에 콜라도 먹을 거냐? 그래야지.

이건 뭐…

잠시 후 아들이 다시 전화를 걸어 왔다.

또 왜? 근데 그 친구도 영화 못보러 간대. 그래? 응. 왜? 시간이 안 된대. 넌 어떡 할래, 언이랑 둘이라도 갈래? 그러지 뭐. 알았다, 아빠 지금 집에 가는 길이니까 가서 얘기 하자. 알았어.

그리하여 나는 지금 버스 타고 집에 가는 도중에 아이폰으로 이거 치고 있다.

요즘은 아이들끼리 영화 보는 이벤트 하나 오거나이즈 하기가 힘든 세상이다. 아마도 학원 때문이겠지. 이건 뭐…

실패한 성동격서 대화법

꼭두새벽부터 우리의 멍이님, 컴퓨터 삼매경에 빠져 계시다.

따위: 떼멍아, 이제 답사 보고서 써야지.
멍이: 아침 먹고 쓸게.
따위: 그럼 아침 먹고 컴퓨터 해.
멍이: 그냥 지금 컴퓨터 하고 아침 먹고 시간 많을 때 보고서 쓸게.

위 대화의 실제 뜻은 이러하다.

따위: 떼멍아, 컴퓨터 그만 해라.
멍이: 싫어.

멍이님은 컴퓨터 계속하시고 나는 원통하고 절통하여 이 글을 쓴다. 이 상황에 가장 억울한 건 명의만 빌려준 답사 보고서다.

구멍난 팬티가 있는 풍경

언: 마더, 오늘 저녁 메뉴는 뭐예요?
마더: 김치볶음밥!
엽, 언: (동시에) 우와.

사이. 언이는 샤워했고, 엽이는 뭐했는지 모르겠고, 나는 중요한 거 했다. 마더는 밥했다. 우는 어디 가고 없다.

우: (돌아와 현관문 열고 들어오면) 왔어요.
언: 왔어?
우: …
언: 아, 그리고 누나, 하나 알려 줄게. 오늘 저녁 메뉴는 김치볶음바압.
우: 야, 그런데 어제 (엽이를 보며)니가 입고 있던 팬티를 오늘 왜 (언이를 보며)니가 입고 있어?
언: 몰라아.
우: 어쨌든 그거 구멍 났으니까 버려.
엽: 그렇다고 버릴 필요 까지야아.

다운로드 키드의 생애는 무엇으로 구성될 것인가.

“괴물 보고 싶다.”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어제 마트에서 사온 크림빵을 낼름 챙겨먹은 녀석은, 아마도 이 길고 긴 월요일 오후는 또 뭘 하며 보내야 하나, 몸부림치고, 몸서리도 치며, 고민했을 것이다. 그러다가 저 말이 불쑥 튀어 나왔으리라.

좋다. 다운 받아 주겠어. 나는 굿 다운로더니까. 굿 다운로더 몰라? 영화관에 가면 영화 시작하기 전에 유명 영화 배우들이 우르르 몰라 나와 굿 다운로드, 굿 다운로드, 하잖아. 또, 예쁜 여자애가 카메라 광고도 하면서 핸드폰을 진동으로 하라는 둥, 앞자리 발로 차지 말라는 둥, 관람 에티켓 지키라고 훈계도 늘어 놓고.

“아빠가 영화를 다운로드 받는 동안 너는 거실에 늘어놓은 레고를 주어 담도록 하여라.”

“네.”

아, 석봉이 어머니 심정을 또 알겠다. 나는 떡을 다운로드 받으마. 너는 레고를 맞추도록 하여라. 문제는 괴물이 다운로드 목록에 없다는 거였다. 이제 어쩌지? 이제 어쩌지, 이 대사 모르는가? 니모를 찾아서, 마지막 장면에서 치과 의사의 수족관을 집단 탈출한 물고기들이 투명한 비닐 봉지 속에서 속수무책으로 치던 드립 말이다.

“다운로드가 안 된다.”

녀석 급 실망하더니 대안을 찾는다.

“그러면 몬스터 에얼리언 볼래.”

“그건 뭔데?”

“있어.”

자식놈님께서 있다면 있는 줄 알아야지. 아빠 따위가 별 수 있나? 나는 다시 영화를 검색한다. 행인지 불행인지 이 영화도 다운로드 목록에 없다. 거 굿 다운로더 되기 되게 힘드네.

“그것도 안 된다.”

“그럼 DVD 빌려다가 볼래.”

녀석은 포기하는 법이 없다. 나는 손을 부르르 떨며 고이고이 모셔둔 500원짜리 네 개를 건네며 묻는다.

“레고를 다 담고 나서 빌려올 거냐? 아니면 빌려온 다음에 레고를 담을 거냐?”

“아빠는 어떻게 하는 게 좋겠어?”

“나는 아무 상관 없다.”

는 말이 시작되기도 전에, 녀석은 인라인스케이트를 신고 다녀 올게요, 하고 나갔다가 차 조심하라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돌아와 삑, 삑, 삑, 삑, 현관 문을 연다.

“왔어요.”

“빌려 왔어?”

“엉, 다행히 대여가 안 됐더라구우.”

신이 난 녀석의 말꼬리가 올라간다. 뭐, 대여? 너 방금 대여, 라고 발음했냐? 이 아빠가 대여, 라는 말도 몰라서 너 한테 빌려왔냐, 고 물어 봤겠냐? 대여 자 한자로 쓸 줄도 모르는 무식한 녀석이… 감히 어디서, 어따 대고, 문자야, 문자가. 내가 이런 생각을 하거나 말거나 녀석은 괴물 삼매경에 빠져든다.

“온다. 온다. 아빠, 재미 있는 장면이야. 아빠도 와서 봐.”

“너나 봐.”

“헐. 흐흐흐. 와우. 특수 효꽈 완전 잘 하는데. 흑. 아싸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