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어는 소설에서 발췌한 구절이다.
어부는 선착장에서 늙은 구장을 만났다.
인자 나가는가?
예, 인자 나가요. 밥은 자셨소?
구장은 그의 아버지의 친구로 친구들이 모두 죽고 홀로 남은 이가 흔히 그렇듯 훨씬 더 늙어 버린 관계로 잠시 정신이 오락가락했기에 그는 목소리를 잔뜩 높였다.
요즘 갈치가 무는가, 돔이 무는가?
암것도 안 무요.
이, 그라믄 나도 한 마리 좀 낚어다 주소.
어르신, 바다에서 고기가 한 마리도 안 문단께라.
죽어야 쓰는디.
정신의 오락가락은 말의 오락가락으로 바뀌기 쉬웠다.
무슨 말씀이요. 오래 사시야지.
죽는 것이 좋아. 죽어 삐린 것이 좋당께.
죽는 것이 뭐가 좋습니께. 이승 강아지가 죽은 정승보다 낫다고 안 그랍디여.
다들 죽어 삐리잖어. 죽어 뿔고 나서 죽어 간 디가 고약타고 돌아온 사람이 있능가?
그는 낚시 채비들 내려놓고 늙은이를 내려다봤다. 눈물과 눈곱이 항시 머물러 있는 그곳에는 그러나 보기에 무슨 기운이 지나가는 듯도 했다. 이제 죽어야 할 때를 알아차린 듯도 했고 어쩌면 산 귀신이 되어 가는 듯도 했다.
이? 봤냐고. 거그가 싫다고 온 사람을.
그 말도 맞소.
어부는 대답을 작게 했다.
어부는 그쯤에서 대꾸를 멈추고 배의 밧줄을 끌어당겼다. 늙은이 만큼이나 늙은 배가 느릿느릿 다가왔고 그는 잠시 배의 움직임이 구장의 걸음걸이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배 갑판이 간밤의 이슬로 촉촉해서 늙은이의 입에서 끊임없이 흘러내린 침을 꼭닮아 있었다.
그렇다믄 어이, 나 참짱애(장어)나 한 마리 낚어다 주소이? 그놈 이나 한 마리 과서 묵으면 좀 살 것 같네 이.
늙은이는 아주 짧은 순간에 죽을 것에서 살 것으로 돌아와 있었다.
그놈을 들지름 쪼깜 놓고 뽁아 갖고는.
늙은이의 말은 거기서 멈췄다. 입을 다문 게 아니라 기계소리에 묻힌 것이다. 어부가 그의 오래되고 작은 배의 기계를 돌리고 나서도 늙은이의 말은 뭐라고 구시렁구시렁 계속되었던 것이다. 늙는다는 것은 어쨌거나 젊은 것들이 짐작하기 어려운, 죽음이나 또 다른 삶에 대한 쪼가리 같은 샛길을 발견해 가는 중이라 할 만한데 그래서 그들은 수시로 이곳을 떠나 저곳으로 잠시 다녀오는 버릇이 생긴 것이다. 여전히 늙은이는 서서히 꽁무니를 빼는 배를 바라보며 뭐라고 궁시렁대는 중이었다.*
정치인들이 가끔 웃기는 건 딴소리를 잘 하기 때문이다. 딴소리를 잘 하려면 일관성이 없어야 하고 조금전에 했던 말을 붕어처럼 잊어버리면 된다.
*출처: 2000년도 24회 이상문학상작품집 <돗낚는 어부> 중에서, 한창훈 281~282쪽, 문학사상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