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반복하면 웃긴다

대중문화의 저속한 형식은 굴욕감을 느끼게 하는 반복이다: 내용, 이데올로기의 음모, 모순들을 흐리게 하는 것, 이들은 반복되나, 외형적 형식들은 다양하다: 항상 새로운 책들, 새 프로그램들, 새 영화들, 새 항목들, 그러나 항상 똑같은 의미.

─ 롤랑 바르뜨, 김명복 옮김, < 텍스트의 즐거움>, 연세대 출판부, 46쪽

안 웃긴 것도 반복하면 웃긴다. 그러니 남을 웃기고자 하는 사람은 뭐든지 반복하면 된다. 그게 무엇이든 말이다. 가령, 같은 말을 반복하라. 아무 말이나 마음에 드는 말을 하나 고르고 그 말을 일주일동안 계속해서 상용해 보라. 가령, ‘그런데 무궁화 꽃은 왜 피었을까?’ 이 말을 반복해보라.

__친구야, 점심시간이다. 밥 먹으러 가자. 그런데 무궁화 꽃은 왜 피었을까?
__학생여러분! 다음 주까지 ‘웃을 때 인간의 신체에 일어나는 현상’에 대해서 A4용지 다섯 장 분량으로 보고서를 제출하세요. 손으로 쓴 것만 받겠습니다. 그런데 무궁화 꽃은 왜 피었을까요?
__눈 온다. 술 먹자. 그런데 무궁화 꽃은 왜 피었을까?
__박팀장! 기획서 준비 다 되었으면 대회의실에서 다 같이 보자구. 그런데 무궁화 꽃은 왜 피었을까?
__아빠, 오늘 개그콘서트 하는 날이야? 그런데 무궁화 꽃은 왜 피었어?

비슷비슷한 소리를 반복하면 웃긴다. 가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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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터는 혼자서 살아갑니다.

애벌레가 알에서 천천히 빠져 나옵니다.
바늘 같은 입도 작은 낫 같은 앞다리도 제대로 생겼습니다.
아빠물자라의 등 위에서 듬뿍 공기를 마시고 흰 몸을 폅니다.
저것 보세요. 넓적한 모양의 애벌레입니다.
아빠물자라가 물 속으로 살짝들어가 애벌레를 물에 띄웁니다.
이제부터는 혼자서 살아갑니다.

─ 자연의 신비 20, <물자라>, 교원

밤입니다. 아이에게 책을 읽어줍니다. 나름대로 목소리 연기까지 합니다. 아이는 듣는 둥 마는 둥합니다. 그렇다고 읽기를 멈출 수는 없습니다. 읽기를 멈추면 아이는 ‘땡깡’을 부립니다. 아마도 책읽는 소리를 무슨 사운드 이펙트나 제 놀이의 배경음악 쯤으로 여기지 않나 싶습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어여어여 읽어 마지막 페이지에 닿아야 책 읽어주기의 괴로움에서 ‘해방’이 됩니다. 그래서 계속 읽습니다. 잠시 딴 생각을 했나봅니다. 눈이 텍스트를 쫓아가고 입이 한음절 한음절 텍스트를 발음하지만 나는 내가 소리내어 읽는 문장을 듣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나는 불성실한 아빠입니다.

그러다가 문득 한 문장을 만납니다. ‘이제부터는 혼자서 살아갑니다’라는 문장입니다. 나는 잠시 아득해집니다. 나는 도리질을 치며 서둘러 책읽어주기를 마칩니다. 제 난데 없는 도리질에 아이가 묻습니다. “아빠, 왜 그래?” “응, 아냐 아무것도”

3. 과장하면 웃긴다

다른 사람을 웃기는, 며느리도 모르는, 방금 외계에서 전해온, 따끈따끈한, 김이 모락모락 나는, 소림사 창건 이래 누대를 일부 극소수 고수들에게만 전해 내려온 비법을 알려드리겠다. 뻥이 좀 심했다. 아무튼 다른 사람을 웃기고자 하는 의도와 의지와 자세와 태도를 가진 자가 배워야 할 유일무이하고 절대적인 수사학이 있다면 그건 무엇보다도 과장법이다. 과장! 이는 실제보다 크게 떠벌리는 것을 말한다. 아시다시피 침(侵)은 작고 봉(棒)은 크다. 뭐든지 침소봉대하는 것. 가령, 바늘만한 무서움과 떨림을 야구방망이만한 전율과 공포로 확대하는 것. 뭐 이런 것이 과장법이다. 황과장! 내 과장이 무슨 과장인지 아시겠지요?

표현을 과장하라.
어젯밤에 모기 한 마리가 웅웅거려서 잠을 못 잤다고 말하지 말고, 어젯밤에 모기 한 마리가 귓가에서 천둥을 치는 바람에 잠을 못 잤다고 말해라. 그대가 그립다고 말하지 말고 그대가 300Km나 그립다고 말하라. 사랑한다고 말하지 말고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죽어’도 사랑한다고 말하라.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어’도 사랑한다고 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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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시의 컴플렉스

[…]그리고, 좀더 그럴싸하게 말하자면 11시의 컴플렉스 때문이었다고도 할 수 있다. 오전 11시의 아파트 거실에 퍼지는 커피 향처럼 살고 싶다는 소망이 있었다. 아침 설거지를 끝내고, 청소기를 돌리고, 빨래 널고, 그러고 나면 11시 무렵이지 않겠는가. 그 다음엔 뭘 할까.[…]

─ 박금산, ‘통’, 문예중앙 104(2003 겨울)

엄마

불행하게도 ─ 하하, 불행하게도라고? ─, 내가 내 생애에 처음으로 발음한 완전한 단어는 ‘열쇠’라든가 ‘꿈’이라든가 하는, 문학적 재능의 징후를 보여주는 말이 아니라, 그저 ‘엄마’였다.

─이인성, <한없이 낮은 숨결>, 문학과지성사, p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