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이 어느 날 느닷없이 내린 모진 결정에 아이는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그야말로 온몸을 던져 성심껏 성의껏 저항했다. 아이는 정말 열심히 울었다. 하긴 제 까짓게 할 수 있는 게 그거 말고 또 뭐가 있겠는가. 부조리한 세상! 그저 우는 시늉만 해도 득달같이 가져다주던 우유를 이제는 아무리 열심히 울어도 주지 않으니 부조리도 그런 부조리가 없고 불합리도 그런 불합리가 없을 것이었다.
오늘 아침에 아이의 할머니는, 아이가 울다 지쳐서 설핏 잠들어서도 “우유…우유…”하면서 중얼거렸다고 말했다. “얼마나 애처로운지 아니…”라고 덧붙이시는 걸 잊지 않았다. “그 애처로운 걸 왜 시작하셨어요. 어머니. 그냥 애가 더 이상 안 먹겠다 할 때까지 주구장창 먹이면 안 되나요.” “예전에 그렇게 키운 아이는 서당 가서 천자문 읽고 와서는 제 어미 앞가슴을 풀어헤치고 젖을 먹었다고 하더라. 어차피 언젠가 한번은 거쳐야할 과정이란다.” 나는 할 말이 없었고 마음이 짠했다.
이제 이틀이 지났다. 나우도 기엽이도 이런 과정을 한 번씩 거쳤다. 그때도 내가 이랬던가. 잘 모르겠다. 하기는 밤에 나 자는데 시끄럽지만 않으면 애가 젖병을 떼거나 말거나 나하고는 ‘무관한’ 일이었을 것이다. 내가 아이 젖병하나 끊는데 이 유난을 떠는 건, ‘죽이는’ 꿈이나 꾸면서 잠들었다가 애 울음소리에 깨어나 보면 우는 아이 달래려고 쩔쩔매고 있는 ‘노인네’를 보는 일이 안쓰럽고, 마음 약해서 우는 아이를 업어주고 있는 아내가 안쓰럽고, 그래서 그런 것뿐이다.
자동차 사고는 ‘하이카’가 다 알아서 해주고, 아이 키우는 건 아내가 다 알아서 해주고…그러면 얼마나 좋은가. 에구구. 잠을 설쳤더니 졸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