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4년 5월 29일, 집 근처 공원, FM2, Fuji Auto 200
놔, 이거. 우리 엄마야.
아냐. 우리 엄마야.
안 놔, 이거. 우리 엄마라니깐.
아냐, 아냐. 우리 엄마야. 엄마, 엄마, 우리 엄마 맞지? 응?
우리 엄마 손 놓고 너는 아빠한테 가.
싫어. 니가 아빠한테 가. 난 엄마하고 있을거야.
아냐, 우리 엄마야. 내가 엄마 손 잡고 갈거야.
─ 2004년 5월 29일, 집 근처 공원, FM2, Fuji Auto 200
놔, 이거. 우리 엄마야.
아냐. 우리 엄마야.
안 놔, 이거. 우리 엄마라니깐.
아냐, 아냐. 우리 엄마야. 엄마, 엄마, 우리 엄마 맞지? 응?
우리 엄마 손 놓고 너는 아빠한테 가.
싫어. 니가 아빠한테 가. 난 엄마하고 있을거야.
아냐, 우리 엄마야. 내가 엄마 손 잡고 갈거야.
우울씨는 지하철을 탈 때 대개 중간칸을 피한다. 누군가 지하철을 폭파시킨다면 중간 칸에 폭약이 든 가방을 두고 내일 것이라는 피해망상증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모처럼 호젓한 토요일 오전, 호기를 부려 애들에게 큰 소리를 칩니다.
“야, 이기엽. 너 오늘 아빠하고 뭐하고 놀건지 생각해보고 얘기해.”
딴 짓을 하고 있던 아이가 별반응을 안보이자 아내가 거들고 나섭니다.
“기엽아, 아빠가 오늘 아빠하고 뭐하고 놀고 싶은지 생각해보고 얘기하래.”
그제서야 기엽이가 삐딱하게 쳐다보더니 말합니다.
“응, 오늘 아빠하고 어디 가고 싶은지 얘기하라구?”
나는 이크, 싶어서 교정을 합니다.
“아니, 어디 가고 싶은지가 아니고 아빠하고 뭐하고 싶은지 얘기하라구.”
아이가 금새 “으힝.”하며 싫은 체를 합니다.
“알았어. 알았어. 그러면 오늘 아빠하고 어디 가고 싶은지 얘기해.”
하는 수 없이 한 발 물러서기는 했지만 걱정이 앞섭니다. ‘저게 에버랜드라도 가자고 하면 어쩌지? 아니면 롯데월드?’ 이윽고 한 참을 생각한 듯한 표정으로 아이가 말을 합니다. 이랬습니다.
“가게. 요 앞 상가에 있는 가게.”
휴, 십년 감수했습니다. 5백원이면 좋은 아빠가 될 수 있을 듯합니다.
+ 쓸쓸하다니, 이 마당에 대체 그게 무슨 소용이 있어?
= 너는 소용이 없으면 쓸쓸해 하지도 않는다는 투로 말하는 구나.
+ 쓸쓸해 한다고 해서 안 쓸쓸해지지는 않아.
= 그게 무슨 말이야? 너는 슬퍼하면 안 슬퍼져? 너는 안 슬퍼지려고 슬퍼해?
+ 그야 슬프기 때문에 슬퍼하는 거지.
= 마찬가지야. 나도 쓸쓸하기 때문에 쓸쓸해 하는 거라구.
+ 알아. 물론 그렇다는 거. 그런데 쓸쓸하면 누군가를 만나거나, 따뜻한 차라도 한 잔 마셔야지 그렇게 마냥 쓸쓸해 한다고 해서 그 쓸쓸함이 사라지지는 안잖아?
= 감정은 원래 목적이 없는 거야. 정해진 용도도 없는 거구. 감정은 그냥 생기는 거야. 기쁠 땐 그만 기쁘려고 노력하지 안잖아? 그거하고 쓸쓸할 땐 그만 쓸쓸해하려고 노력하지 않는 거하고 뭐가 달라?
+ 그야. 기쁨이야 좋은 거니까 그렇지.
= 좋다구? 기쁘면 좋다구? 물론 좋지. 그런데 얼마나 오래동안 기뻐할 수 있는데? 그것도 시간이 흐르면 약해지게 되있어. 감정은 오래 지속되지 않아. 그게 좋은 거든 나쁜 거든. 다 잠시 뿐이지. 다 지나가는 거야.
+ 나는 좋은 감정은 오래 지속되었으면 좋겠고, 나쁜 감정은 금방 끝났으면 좋겠어.
= 그거야 그렇지. 누구나 이 순간이 영원하길 바라는 순간이 있고, 영원히 끝날 거 같지 않는 순간을 견뎌야 하는 순간이 있지.
+ 그래서 결론이 뭔데?
= 쓸쓸하다구.
+ 쓸쓸하다구?
= 그래. 쓸쓸해.
+ 그런데 그만 쓸쓸해 할 수가 없다구?
= 그래. 맞아.
+ 그래? 그럼 계속 쓸쓸해하면 되겠네.
= 그래 맞아. 나는 지금 쓸쓸해.
+ 언제까지 쓸쓸해 할 건데? 그만 쓸쓸해 하고 나하고 저 비오는 거리로 나가지 않으련?
= 비오는 거리로 나간다고 안쓸쓸해지지는 않겠지만, 여기 이러고 있는다고 덜 쓸쓸할 것도 아니니 나가지 뭐.
+ 같이 나가줘서 고마워.
= 고맙기는 뭘.
+ 우리 친구 맞지?
= 친구?
+ 응, 친구.
= 맞아. 우리는 친구야. 나 이제 안쓸쓸한 거 같아.
+ 그거봐. 내가 뭐랬어.
반성 16
술에 취하여
나는 수첩에다가 뭐라고 써 놓았다.
술이 깨니까
나는 그 글씨를 알아볼 수가 없었다.
세 병쯤 소주를 마시니까
다시는 술마시지 말자
고 써 있는 글씨가 보였다.─ 김영승 ‘반성 16’ 전문
아이러니는 쉽게 원래 의도한 의미와는 반대되는 의미를 가지는 말을 사용하는 걸 말한다. 즉 표층의 의미와 저층의 의미가 다르다.
우리가 서로 잘 사귀다가, 서로 또 심통이 나서 헤어지게 되었을 때 ‘너 잘 났다. 잘 먹고 잘 살아라’고 말한다면 말해지는 의미는 말하는 사람이 의미하는 의미와는 반대가 된다. 이런 경우 ‘잘 먹고 잘 살아라’라는 말을 들으면 아주 기분이 나빠진다.
이렇게 말에 의한 아이러니를 언어의 아이러니(verbal irony)라고 한다.
아이러니는 또한 행동과 그 행동의 결과가 상반되거나, 겉모습과 실재가 서로 상반되는 것을 말한다. 가령, 독립기념관을 짓는다면서 일본의 건축자재를 사용하는 것 등이 그렇다.
고종석의 글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우리말에서 일본어를 몰아내자는 순수주의자의 멋진 글들도 일본에서 온 말들로 이뤄져 있다.”*
그게 무슨 영화더라. 딱지 끊은 경찰이 거스름돈 안 거슬러 주자 확성기 들고 경찰차 따라가면서 거스름돈 내 놓으라고 하던 영화는?
아기공룡 둘리는 멍청하면서도 정 많은 ‘고길동’ 아저씨네 빈대 붙어 산다. 둘리가 자기 친구들에게 ― 친구를 보면 그 사람을 안다고 둘리는 꼭 저 같은 놈들만 사귄다.― 길동이 아저씨를 얘기할 때는 꼭 이렇게 말한다. 즉, 친구가 ‘저 사람은 누구니?’ 하면 ‘응, 내 애완동물!’
밖에 상황의 아이러니(situation irony)도 있고, 낭만적 아이러니(romantic irony)라고 하는 것도 있고, 소크라테스가 어린 중생들을 계도하기 위해서 사용한 소크라테스 아이러니(socrates irony)라는 것도 있고, 드라마틱 아이러니(dramatic irony)라는 것도 있다. 각자 알아서 공부하시기 바란다. 다시 말하지만 남을 웃기려면 공부 열심해 해야한다.
참고로 소크라테스의 아이러니는 문학용어 사전을 보니 아래와 같이 나와 있다. 번역은 또 각자 알아서 하시기 바란다.
Socratic irony So called after Socrates whose favorite device was to stimulate ignorance in discussion, especially by asking a series of apparently innocuous questions in order to trap his interlocutor into error.
어느 날 동생이가 말했다.
__형, 형이가 내 일기장 훔쳐봤지?
형이 대답했다.
__아니!
동생이가 말했다.
__거짓부렁 마. 내가 형 일기장 훔쳐보니까 형이가 내 일기장 훔쳐봤다고 써있었어.
임권택 감독의 영화 <축제>라는 영화는 이런 영화다.
할머니의 키가 작아지는 것은 당신의 후손들에게 자신의 나이와 지혜를 나눠주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어른들을 위한 동화. 다큐멘터리적인 냉철함과 동화적인 정감을 교차하면서 죽음과 효에 대해 말한다. 40대의 명망있는 작가 이준섭은 5년이 넘게 치매를 앓아온 시골의 노모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고 분주하게 고향을 찾는다. 87살 할머니의 죽음은 많은 사람들에게 제각기 다른 감정으로 다가간다. 특히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를 손수 모셔온 형수의 감정은 홀가분함과 애석함이 교차한다. 한편 준섭의 모친상을 통해 그의 문학 세계를 재조명하는 기사를 쓰러 온 기자 장혜림은 장례식의 이모저모를 취재하기에 바쁘다. 장례가 시작되고, 어머니의 죽음을 놓고 생기던 골이 깊어만 간다. 그러나 장례식이 진행되면서 가족들의 갈등은 서서히 풀리고, 할머니를 모시지 않은 삼촌 준섭을 원망하던 용순은 준섭이 쓴 동화를 읽고 눈물을 흘린다. 장례가 끝나자 가족들 각자는 노모가 남겨준 큰 사랑과 삶의 지혜를 간직하게 된다. 96년 청룡영화상 최우수 작품상, 감독상 수상작.
─ http://www.cine21.co.kr/Db-104/sbject_search03.c21?id=32
본 지가 오래되서 가물가물 하지만 내 기억에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이렇다.
초상을 치룬 사람들이 모두 모여 사진을 한 장 박는다. 얼굴 표정이 모두 죽상이다. 이때 누군가 한마디 한다. 안성기 였던가?
왜 그렇게 시무룩하냐? 누구네 초상났냐?
그러자 사람들 모두 활짝 웃는다. 찰칵!
그리고 영화는 끝난다. 한바탕의 축제! 아이러니한 제목이다.
* 고종석 지음, <감염된 언어>, 개마고원, p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