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의 덤 앤 더머

+ 쓸쓸하다니, 이 마당에 대체 그게 무슨 소용이 있어?
= 너는 소용이 없으면 쓸쓸해 하지도 않는다는 투로 말하는 구나.
+ 쓸쓸해 한다고 해서 안 쓸쓸해지지는 않아.
= 그게 무슨 말이야? 너는 슬퍼하면 안 슬퍼져? 너는 안 슬퍼지려고 슬퍼해?
+ 그야 슬프기 때문에 슬퍼하는 거지.
= 마찬가지야. 나도 쓸쓸하기 때문에 쓸쓸해 하는 거라구.
+ 알아. 물론 그렇다는 거. 그런데 쓸쓸하면 누군가를 만나거나, 따뜻한 차라도 한 잔 마셔야지 그렇게 마냥 쓸쓸해 한다고 해서 그 쓸쓸함이 사라지지는 안잖아?
= 감정은 원래 목적이 없는 거야. 정해진 용도도 없는 거구. 감정은 그냥 생기는 거야. 기쁠 땐 그만 기쁘려고 노력하지 안잖아? 그거하고 쓸쓸할 땐 그만 쓸쓸해하려고 노력하지 않는 거하고 뭐가 달라?
+ 그야. 기쁨이야 좋은 거니까 그렇지.
= 좋다구? 기쁘면 좋다구? 물론 좋지. 그런데 얼마나 오래동안 기뻐할 수 있는데? 그것도 시간이 흐르면 약해지게 되있어. 감정은 오래 지속되지 않아. 그게 좋은 거든 나쁜 거든. 다 잠시 뿐이지. 다 지나가는 거야.
+ 나는 좋은 감정은 오래 지속되었으면 좋겠고, 나쁜 감정은 금방 끝났으면 좋겠어.
= 그거야 그렇지. 누구나 이 순간이 영원하길 바라는 순간이 있고, 영원히 끝날 거 같지 않는 순간을 견뎌야 하는 순간이 있지.
+ 그래서 결론이 뭔데?
= 쓸쓸하다구.
+ 쓸쓸하다구?
= 그래. 쓸쓸해.
+ 그런데 그만 쓸쓸해 할 수가 없다구?
= 그래. 맞아.
+ 그래? 그럼 계속 쓸쓸해하면 되겠네.
= 그래 맞아. 나는 지금 쓸쓸해.
+ 언제까지 쓸쓸해 할 건데? 그만 쓸쓸해 하고 나하고 저 비오는 거리로 나가지 않으련?
= 비오는 거리로 나간다고 안쓸쓸해지지는 않겠지만, 여기 이러고 있는다고 덜 쓸쓸할 것도 아니니 나가지 뭐.
+ 같이 나가줘서 고마워.
= 고맙기는 뭘.
+ 우리 친구 맞지?
= 친구?
+ 응, 친구.
= 맞아. 우리는 친구야. 나 이제 안쓸쓸한 거 같아.
+ 그거봐. 내가 뭐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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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Comments

  1. 오랜만에 새벽비 오는 소리에 깬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비가 좋은 건 무슨 이윤지 모르겠다.
    썬글라스를 쓰고도 눈이 부셨던 그간의 날씨에 복수라도 하듯이,
    온 도시가 뿌옇다.
    오늘은 꽃 모종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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