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길

July2004_night_street.jpg

저벅저벅─
어떤 날은 젖은 솜처럼 무겁고
룰루랄라~
어떤 날은 깃털처럼 가벼운 걸음으로 내가
걸어 걸어 걸어, 처자식이 기다리는 집으로 가는 밤길
인생 뭐 있나?
이 길이 내 길인걸.
그러니 걷는 거지.
내가 “아빠 왔다.”하면 우르르 달려나올 애들을 향하여─

나는 왜 자꾸만 손닿지 않는 곳이 가렵나

벌 받고 있구나, 교각이여
너는 무슨 잘못으로
먼 길을 들고 서 있느냐
잠시 내려놓을 수도 없는 길
길은 무겁구나
저 아래 발가락쯤에서 시작된 가려움이
몸속의 철근을 타고
기어이 전신으로 기어오르는 구나
세상으로 가는 먼 길이
흔들리는 구나
나는 왜 자꾸만 손닿지 않는 곳이 가렵나
박박 긁을 수도 없는
이 치욕적인 내부

풍경 멀미


─ 2004년 7월, 경기도 가평 가일미술관

경치가 너무 좋아 멀미가 날 지경…
한 숨 쉬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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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장님께서 “눈이 쌓이면 내려와 글이나 쓰라”고 하셨다.

난형난제

엽이와 언이가 사이좋게 티격태격하면서 논다. 방바닥에 나무조각들을 잔뜩 늘어 놓고 뭔가 만들고 있는 중이다. 짜식들이 아빠 닮아서 창의력이 만땅 충전이군, 하며 한번 쓱 쳐다보고 나는 내 할 일 한다. 내 할 일이 뭐냐구? 그냐 TV보는 거지. 이 따위가 일요일 낮에 할 일이 뭐가 있겠어? 쑥스럽게 뭘 그런 걸 다 물어보고 그러시나.

“퀴즈가 좋다2″를 보는 데, 도대체 저 실력으로 어떻게 예심을 통과했나, 빽 섰나 싶은 선수들 둘이 이번엔 내 차례, 이번엔 니 차례 하면서 번갈아 틀려준다. 선수들 하는 모양새 좀 보자.

1단계 문제. 식사 전에 식욕을 돋구려고 내놓는 걸 뭐라하나?
1. 사이드 디쉬 2. 메인 디쉬 3. 애피타이저 4. 디저트

한 선수가 떡하니 답을 고르는 데 4번 디저트 한다. 이 문제는 다른 선수가 맞추었으나 결국 둘이 합쳐 5단계를 못 넘기고 아웃되었다.

그런데 옆에서 들려오는 엽이와 언이의 대화가 가관이다.

……
언: 아빠가.
엽: 어느 아빠가. (손가락으로 날 가리키며) 이 아빠가?
언: 응. (손가락으로 날 가리키며) 얘가.

그러니까 기엽이 한테는 아빠가 여러명 있는데 그중에서 지금 텔레비전보면서 투덜거리는 아빠가 ‘이’ 아빠고, 지위고하 상하불문 무조건 맞먹고 보는 언이한테는 내가 ‘얘’인 거다.

부끄러운 커서 1

오늘도 내 커서는 어디로 가야할지를 몰라 하릴없이 모니터 밖을 서성거렸구나 나는 키보드로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