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간의 어깨동무 및 손잡고 다니는 행위’는 50점 ‘동성간의 비정상적인 교제’는 80점

지난해 3월 인천외고에 부임한 이남정 교장은 명문 고등학교 변신 계획의 총대를 메고 있었다. 이교장은 학생들에게 스파르타 교육을 했다. 2003년에는 유급 제도를 시행해 1·2학년 34명을 유급 대상자에 올렸다가 학부모의 서약서를 받고 철회했다. 2004년에 는 벌점제도를 만들었다. 벌점제는 그 기준의 투박함 때문에 호사가들의 입방아에 올랐다. 지각은 벌점 5점, 두발 위반은 10점, ‘이성 간의 어깨동무 및 손잡고 다니는 행위’는 50점, ‘동성 간의 비정상적인 교제’는 80점이다. 규정상 벌점 100점이 넘으면 퇴학시킨다고 되어 있다.

기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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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년 7월 집, fm2, nikkor 50mm 1.4f fuji superia autoauto 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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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

태풍이 베란다높이까지 올라와
창문을 뒤흔드는 일요일 아침,
이 生에 나는 더는 욕심없어라.
온 식구가 이렇게 이불 잔뜩 널어놓고
뒹굴며 한 세상 지나가면 그뿐.

빵 굽는 타자기

폴 오스터 지음, 김석희 옮김, <<빵굽는 타자기: 젊은 날 닥치는 대로 글쓰기, Hand to Mouth: A Chronicle of Early Failure >>, 열린책들, 2000

한글제목 “빵 굽는 타자기”는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산다는 의미의 원제 “Hand to Mouth”처럼 직접적이지 않다. 직접적이지 않은 만큼 낭만적이다. 그만큼 배고픔의 절실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적어도 나한테는 그렇다. 그러니 제목을 적나라하게 까발려 보자. 빵은 ‘밥’을 넘어 ‘생계’를 지나 ‘생존 그 자체’를 뜻하는 환유이고 타자기는 ‘글을 쓴다.’는 행위를 의미하는 환유이다. 이 두 겹의 환유를 걷어내면 의미는 명확하다. 이렇게 해보자. “글 써서 밥 벌어먹고 살기” 됐다. 책 제목으로는 멋대가리 하나도 없지만 느끼한 낭만은 쪽 빼고 팍팍한 건더기만 남았다, 고 치자. 혹 너무 평이 하다 생각이 들면 조금 고상하게 “생존의 글쓰기”라고 해도 되고.

자, “내 꿈은 처음부터 오직 작가가 되는 것이었다.” 작가 말이다. 의사도 아니고 변호사도 아니고 과학자도 아니고 작가 말이다. 그러나 “글만 써서는 입에 풀칠하기도 어렵다. 비바람 막아 줄 방 한칸 없이 떠돌다 굶어 죽지 않으려면, 일찌감치 작가가 되기를 포기하고 다른 길을 찾아야 한다.” 안다. 내가 그것도 모르고 작가가 된다고 했겠나?

그 모든 걸 다 알면서도 작가가 되겠다고? 왜? 도대체 작가가 뭐 길래? 언제나 그렇듯 이 “왜?”에 대한 대답은 각자의 몫이다.

젊은 날, 그는 열심히 쓴다. 그야말로 닥치는 대로 쓴다. 시도 쓰고 평론도 쓰고 소설도 쓰고 희곡도 쓰고. 배도 타고, 여행도 하고, 번역도 하고 결혼도 하고 애도 낳고 하면서 쓰고 또 쓴다. 늘 하루 벌어 하루 먹으면서도 그는 굴하지 않고 쓴다. 쓴다. 쓰고 또 쓴다. 작가는 써야 작가니 쓴다.

그러다가 생활에 궁핍해지고 막판에 몰리자 딴 짓도 해본다. 일테면 카드야구게임을 개발해서 “일확천금할 꿈”을 꿨다가 좌절하기도 하고, 여기저기 이력서를 보내보기도 한다. 뭐 되는 일이 없다. 그래도 쓴다. 쓴다는 걸 멈출 수는 없다. 나는 작가가 될거다.

“나는 더 이상 일확천금을 꿈꾸지 않았다. 하루하루 성실히 일하고 정당한 대가를 받는 것, 생존의 기회를 얻는 것, 그것이 내가 바라는 전부였다.” 그리고 그는 또 쓴다.

우여곡절 끝에 그는, 자살로 위장한 살인 사건을 해결한다는 흔하디 흔한 탐정소설의 구조를 180도로 확 뒤집은 소설, 즉 타살인줄 알았는데 밝혀보니 자살로 끝나는 탐정소설을 하나 쓴다. 그러나 쓴다고 끝나는 게 아니다. 출판을 해야 한다. 출판도 쉽지 않다. 그 와중에 결혼 생활은 파경을 맞고 “원고는 비닐봉지에 처박힌 채 거의 잊혀진 상태”다. 또 4년의 세월이 흐른다. 그동안에도 그는 쓴다.

새로 출판사를 차리는 친구가 “혹시 쓸 만한 원고를 가지고 있느냐고” 묻길래 그 ‘비닐봉지에 든 원고’를 넘긴다. 원고를 넘겼지만 책을 만드는 일은 또 “2년 동안이나 지지부진”하다. 드디어, 바야흐로, 마침내, 파이널리 책이 나왔으나 책은 팔리지 않는다. 기왕 이렇게 된 거 마지막으로 ‘페이퍼백’ 출판사에게 원고를 보내 본다. 죽을 때 죽더라고 갈 데까지 가보자는 심정이다. 쉬운 말로 못먹어도 고! 실랑이도 흥정도 속셈도 없이 계약을 하고 “단돈 9백 달러”를 손에 쥔다.

마지막 문장이 쓸쓸하다. “돈을 벌기 위해 책을 쓴다는 건 그런 것이다. 헐값에 팔아 치운다는 건 그런 것이다.”

에이, 또 그날 아침이 생각난다. 아, 두고두고 잊지 못하리. 간밤에 또 뭔 짓거리 하느라고 늦게 잠든 나를 깨우며 아내가 말했다. “자기야, 우리도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아침형인간이 돼보자.” “싫어. 나는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작가가 될 거야.” 내 대답을 들은 아내가 중얼거리며 나갔다. “작가는 작품이 있어야 작가지. 아무나 작가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