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위 공작소

040614_moraenae_daejangkan.jpg
─ 2004년 6월, 모래내 대장간, 버스를 타고 창밖을 찍다

따/위/공/작/소
어여 간판을 내걸어야 할텐데…
마음만 굴뚝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지도다

며칠 전에 어느 여행사에서 연하장 만든다고 뭐좀 써달라고 하기에

“2005년 어느 날, 당신께서 보내주신 그림엽서는 잘 받았습니다. 멋지군요. 남국의 어느 바닷가 야자수 그늘에 매달린 해먹에 누워 흔들리다가 시나브로 잠이라도 들라치면, 이곳의 복잡한 세상사는 잠시 잊으셔도 좋겠습니다. 모쪼록 오실 때 투명한 햇살과 쪽빛 바람이나 한 깡통 담아다주십시오.”

라고 써주었다. 행여 이 말이 인쇄된 연하장 받아본 사람들이 ‘지진과 해일’을 떠올릴까봐 겁난다. 이미 내 손을 떠난 일이니 발송하지 말랄 수도 없고. 찜찜하다.

어제 저녁, 어 쫌 춥네, 하며 버스 타러 가는데 웬 낯선 젊은 여자가 다가 오더니 나에게서 좋은 기운이 느껴진다고 했다. 내가 그렇지 뭐 워낙 생각이 올곧고 영혼은 또 백설이 만건곤할 적에 독야청청한 소나무처럼 형형하니 이 바디가 움직일 때마다 좋은 기운이 담배연기처럼 사방으로 뿜어져나올만도 하지, 하고 속으로 생각한 다음 물었다.

그래 무슨 일이슈? 딱 5분만 얘기하잔다. 나 바빠유, 했더니 그 옆에 서 있던 딴 여자가 거들며 가로되, 선생님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그 좋은 기운을 잘 다스려야 내년에는 선생님 가족의 운세도 피는 겁니다, 한다. 요즘은 이런 것도 버디로 하는가부다, 하고 또 속으로 생각한 다음, 난 운세 따위엔 도통 관심이 없수다, 그럼 추운데 계속 고생하슈, 난 가우, 하며 내 가던 길 가고자 했더니, 참나, 기가 막혀서, 내가 저희들을 좌청룡 우백호로 임명하기라도 한 것처럼 두 여자가 좌우에서 나를 끈길기게 따라붙는 거디었던 거디었다. 딱 5분만요, 5분만요, 하면서 계속 따라오는 거디었던 거디었다. 귀찮으니께 따라오지 마유, 해도 계속 따라오는 거디었던 거디었다. 삐끼도 그런 삐끼가 없었다. 아무래도 하나 건졌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번지수가 틀려도 한참 틀린 것두 모르고 말이다.

그래서 어떻게 됐냐구? 어떻게 되긴? 뭐 교양 없는 짓이기는 하지만 결국 내 입에서 낮게 욕이 나오고야 말았지. 이렇게. 이런 씨발! 효과 직빵이드만. 역시 욕이 최고여. 그 여자들의 허걱!한 표정들을 보여드려야 하는 건데. 욕해 놓구 사진찍자 할 수도 없구. 아까비.

병원 가는 길

병원 가는 길에 어떤 문장 하나를 읽었다

“필요시 누구든지 살포할 수 있습니다.”

이 문장을 읽자 나는 갑자기 뭔가를 막 살포하고 싶어졌다

우선 머리를 털어 비듬을 살포했다

다음으로 최루가스를 살포하고 싶었는데

불행하게도 내겐 최루가스가 없었다

그래서 대신에 나는 도발적인 웃음을 살포했다

사람들이 저런 미친 놈을 봤나, 하는 표정을 지으며 지나갔다

나는 곧 웃음을 멈추었다

어떤 고딩 놈이 거리에 침을 찍─ 뱉었다

어떤 행인이 그 침을 밟고 지나갔다

12월의 아파트 그늘진 거리는 추웠다

“4개월 뒤에 봅시다.”

의사가 말했다

그땐 봄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