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 데 술 먹자고 전화하는 놈 하나 없으면 인생 헛살았다는 느낌이 든다. 비오는 데 술 먹자고 전화하는 놈은 언제 철드나 싶다. 아무튼 비온다. 이 비가 여름이 가는 비인지 가을이 오는 비인지는 모르겠다. 근거가 있는 말인지는 모르겠으나 비가 오면 대기 중에 음이온이 많아져 상악, 하악, 고관절, 무릎관절, 대관절(이건 아니구나), 그 밖에 온 몸의 뼈 마디마디가 구석구석 골로루 쑤신 것이라고 한다. 얘야, 빨래 걷어라(이 고색창연한 표현도 오랜만에 쓰니 내 고향 까마귀처럼 눈물겨웁게 반가웁다). 대기 중에 음이온이 많아지면 몸만 영향을 받는 것도 아니라 정신도 영향을 받는다고 한다(몸에 붙어있는 정신이 어디 가겠는가). 우울함, 쓸쓸함, 외로움, 허무함, 그리움 따위의 감정들이 대략 비가 되어 이 밤의 끝을 잡고 내린다 (그렇다고 뭐 지금 비가 내려서 내가 저런 감정에 휩싸여 있다는 말은 아니다). 어제 밤에는 뜬금 없이 ‘고독’이라는 오래도록 잊고 지냈던 말이 떠올랐다(그렇다고 뭐 지금 내가 새삼스럽게 고독하다는 말은 아니다).

실비아 플라스의 일기에 이런 말이 있다.

오늘은 8월 첫날이다. 뜨겁고 푹푹 찌는 습한 날씨다. 비가 온다. 시를 쓰고 싶은 유혹을 느낀다. 하지만 언젠가 원고 거부 쪽지에 씌어 있던 말이 생각난다. “폭우가 한번 지나가고 나면, ‘비’라는 제목의 시들이 전국에서 쏟아져 들어온답니다.”

아무려나 비가 오니 대략 고독하다. 오늘 밤에도 고독이 바람에 스치운다.

Dr. Lego

DrLego

틈만 나면 저 자세로 죽치고 앉아서
뭔가 만드는 우리의 닥터 레고.
나는 맨날 묻지.
그거 뭐 만든 거야.
그러나 나에게 ‘의미있는 전체’, 즉 게슈탈트가
아이에게도 같은 게슈탈트는 아닐 것이니…

고양이에게

너도 프리랜서구나 인디 고양이 한 마리 밤의 공원을 배회하고 있다 시립도서관 옥상에 내걸린 새마을기처럼 지독하게 무의미하게 흔들리며 나는 담담하게 늙어갈 것이다 돋보기를 새로 한 어머니가 “새 안겅을 끼니 너무 잘 보인다 ^^”고 문자를 보내왔다 꿈은 지독하다 내 마음은 사망사고 발생장소 인디 고양이여 올 가을에는 너에게 통화버튼을 눌러주마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

페터 회(지음), 박현주(옮김),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 마음산책, 2005

스밀라는 눈 위에서 “가속도가 일어난 자국”을 알아볼 만큼 감각이 뛰어나며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술술 읊어댈 정도로 지적이며 차가운 겨울 바닷물 속에서 200M를 헤엄쳐 살아날 만큼 강인하다. 사물과 사태에 대한 냉정하고 과학적인 분석력과 판단력, 인간에 대한 애정, 아웃사이더들에 대한 동류의식, 주류에 대한 체질적인 반감 등 많은 매력을 지녔다. 임기응변으로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이 닳고달은 베테랑 수사관 뺨칠 정도다. 말로도 그렇고 행동으로도 그렇다. 막판에 배를 타고 벌이는 그녀의 신출귀몰, 좌충우돌한 행동은 가히 원더우먼 친동생 수준은 된다. 아, 그리고 그녀는 말만하면 수표를 끊어주는 부자 아빠를 두었다. 스밀라는 인간이 아니다. 거의 수 천 년만에 재림한 초인Ubermensh이다. 사랑스럽다고? 어떤 면에서는 그렇다. 그렇지만 나는 인간을 사랑할 시간도 별로 없다. 내가 가장 좋아했던 구절은 이렇다. “스밀라가 죽으면 내가 스밀라 가죽을 가져도 돼?”

몽당연필

pencil

에구구구
연필을 이만큼 써서
그 좋아하는 ‘예술’이라도 했으면 좋으련만
그럴 리는 없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