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에 낯선 사람들 참 많더라.

오전 2시 20분
삑삑삑삑삑, 다섯 개의 숫자를 누르고 현관문을 연다.
문을 연 나는, 이제 막 잠자리에 들려는 아내와 딱 마주친다.
이크, 제대로 걸렸네.
아내가 묻는다.
누구랑 마셨어?
낯선 사람들이랑.
나는 짐짓 태연하게 대답한다.
거짓말마. OOO이랑 마셨지.
나는 완강하게 부정한다.
정말이야, 낯선 사람들이랑 마셨어.
그러나 아내는 알고 있다, 내가 OOO이랑 술마셨다는 걸.
그러나 나는 낯선 사람과 술을 마셨다고 세뇌하며 잠자리에 든다.
거리에 낯선 사람들 참 많더라.

예술가 후원의 어려움

아빠, 내가 왜 마트 가려고 그러는지 알아?
몰라. 왜?
종합장 사려구.
종합장은 뭐하게?
그림 그리게.
그림 그릴 데가 없어?
응. 복사용지는 좀 그렇잖아.
알았어.

우리집 꼬마 예술가 선생을 지원하기 위해서 달포 전에 거금을 들여 수입 수채화 용지(made in Italy)를 사 주었는데, 웬걸, 예술가 선생의 동생 녀석과 누나가 덩달아 달라붙어 수채화 용지를 함부로 쓰는 바람에 ‘아이쿠야, 저 녀석들한테 미술 재료 사 대다가 집안 거덜 나겠다’ 싶어서 그냥 복사 용지나 한 묶음 사주고 말았더니, 그래놓고 까맣게 잊어 먹고 있었더니, 예술가 선생이 기어코 저런 소리를 하는구나. 오호, 통재라.

우리에겐 타인을 부를 적당한 말이 없다

이제 막 저편에서 이편으로, 한 마리의 배 나온 돌고래와도 같이 힘겹게 건너와 숨을 고르고 있는데 뒤에서 누가 툭 친다. 돌아보니 수영강사다. 자기 수강생이라고 알은체를 하는 거다. 강습 없는 날 혼자 나와 연습하는 제자를 보니, 딴에는 기특하기도 할 것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아버님, 열심히 하시네요.”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아, 예.” 그러고선 그는 휑하니 가버리고, 나는 또 멀고 먼 레인 저쪽을 노려본다.

음~파! 음~파! 다시 피안을 향해 헤엄쳐 가며 호흡과 호흡 사이에 나는 생각에 잠긴다. ‘흥, 아버님이 뭐야, 아버님이.’ 그렇다면 수영강사는 나를 무어라 불러야 했을까. 그가 내 이름을 기억할 리 없으니 이름을 부를 수도 없고, ‘저기요’도 그렇고, ‘이봐요’도 아니고, 막 해보자는 게 아니면 ‘코 큰 아저씨’할 수도 없을 테고, ‘선생님’도 우습고, ‘수강생님’은 낯 간지럽고, 그렇다고 막말로 ‘형’도 아니고……. 아무리 생각해도 그가 나를 부를 적당한 말이 없다. 우리에겐 타인을 부를 적당한 말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