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들면 변화를 싫어 한다.

수영장에 들어가려면 누구나 입국심사대를 지나야 한다. 심사대 앞에 서서 여권 같은 회원카드를 내밀면 입국심사요원이 카드를 바코드 판독기에 접촉하는 방법으로 심사를 하고, 결격 사유가 없으면 그러니까 그 달 치 회비를 냈으면 입국허가증, 즉 사물함 열쇠를 준다.열쇠마다 사물함의 번호가 표시되어 있는데 번호는 1번부터 522번까지 있다.

사람들은 대개 요원들이 주는 대로 열쇠를 받아간다. 오늘은 이쪽 구석탱이에 있는 너덜너덜한 사물함, 내일은 저쪽 구석탱이에 있는 지린내 나는 사물함, 그리고 어쩌다가 운이 아주 좋으면 그러니까 해동육룡이 나라샤 일마다 천복이시고 고성이 동부하시면 평상 옆에 있는 사물함이 주어진다. 그런 날은 로또 복권을 사도 당첨되는 날이다. 평상 옆에 있는 사물함이 좋은 이유는 옷 입을 때 앉/아/서/ 양/말/을/ 신/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도 어제처럼, 어제의 어제의 그제의 어제처럼 수영을 마치고 출국심사대에서 열쇠를 반납하고 여권 같은 회원카드를 찾았다. 그때, 한 무리의 누님 할머니들이 옆에서 입국심사를 받고 있었다. 그랬는데 세상에! 그들은 감히 입국심사요원들에게 특정 번호의 열쇠를 요구하는 것이 아닌가.
“어, 난 19번인데 왜 이걸 줘? 나 19번으로 바꿔 줘.” 어느 누님 할머니가 입국심사요원에게 말했다.
요원은 군말없이 열쇠를 바꿔주었다.

“아니, 저분들은 사물함 열쇠도 번호를 지정해서 요구해요?”
누님 할머니들이 우르르 수영장 안으로 출/입국해버리고 난 뒤 나는 요원에게 물었다.
“네, 여성 회원분들은 거의 다 그러시고요, 남자 분들 중에도 나이 드신 분들 중에 그러시는 분이 있어요.”
요원은 쓸쓸하게 웃었다.
“아, 그렇구나.피곤하시겠어요.”
“그렇죠, 뭐.”

사실, 가끔은 아주 가끔은 나도 수영강사들처럼 내 전용─전용하니까 생각나는데 어제 차 트렁크에 있던 워셔액병을 보니 이렇게 씌어 있었다. “모든 차량 전용 4계절 워셔액”─사물함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면 삼푸도 놓고 쓰고, 오리발도 들고 다니지 않아도 되고, 매번 사물함을 찾느라 사물함 골목을 이리저리 헤매고 다니지 않아도 되니까 말이다.

나이 들면 변화를 싫어 한다. 나도 수영장에 가면 맨 날 7번 레인에서만 논다. 새로운 건 두렵다. 특히 새로운 인터페이스를 배워야 할 때가 그렇다. 인터페이스 얘기는 다음에 하게 되면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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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아이들이 없는 집에서 그랑 블루를 보며 날 고구마 두 개로 저녁을 때웠다. 고구마, 구황작물 맞다.
조앤나가 쟈크 미뇰에게 잠수할 때 어떤 느낌이 드느냐고 물었을 때 쟈크가 이렇게 말할 때 하마터면 눈물이 날 뻔했다.
“바닥에 있을 때가 제일 두려워. 다시 올라가야 할 이유를 찾을 수가 없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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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는 인생을 모르면서도 주인공을 삶의 깊이로 내려보내야한다. 그렇게 해서 그가 살아오는 경우 그의 입으로 바다 밑의 무섭고 슬픈 이야기들 듣게 되는 것이요──돌아오지 못하는 경우는, 그의 연락이 끊어진 데서 비롯하는, 그 밑의 깊이의 무서움을 알게 된다.”(최인훈의 <광장> 1973년판 서문)

우연히 뽑아든 책에서 위와 같은 구절을 읽었다. 그러자 바닥에 있을 때가 제일 두렵다던, 다시 올라가야할 이유를 찾을 수가 없다던 쟈크 미뇰의 대사가 생각났다. 그저 메모 삼아 여기에 덧붙여 둔다.

2006년 12월 17일

오늘의 문장

“말이란 찢어진 그물 같은 거야. 고기들이 다 빠져나가는. 차라리 침묵이 더 나을지도 몰라. 어디 한번 침묵해 볼까?”

─ Virginia Woolf, <The Evening Party>

한 폭의 그림

 

 

 

“그림을 보지 않을 수는 없다. 만일 우리 아버지가 대장장이고 당신 아버지가 지체 높은 귀족이라면, 우리는 서로에게 그림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자연스러운 말을 함으로써 액자에서 뛰쳐나오는 것은 불가능하다. 당신이 지나가다가 말굽을 들고 대장간 문간에 기대 서 있는 나를 보면, “한 폭의 그림 같아!”하고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지나가는 사람들에게서 고개를 숙여 보일 것처럼 자동차 안에 아주 편안하게 앉아 있는 당신을 보면, 사치스러운 귀족주의 시절의 영국을 그린 그림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물론 우리의 생각은 그릇된 것이지만, 이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 버지니아 울프, <세 폭의 그림>

 
2006년 11월, 광화문 네거리 지하도, 어느 삶이 웅크리고 앉아 있다.

그 앞을 지나온 중년의 여인이 남편으로 보이는 이에게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쓰레기인줄 알았어.”

 

 

 

파리가 날아다니는 풍경

파리 한 마리
나와 노트북 사이를 날아간다

경이로와라
생명이여

나는 친구 사무실에서 훔쳐온 고등학교 문법책을 들여다 보고 있고
노트북 모니터에는 당신의 블로그가 떠있다

 

 

 

 

 

 

따위 블루 37’2

<베티 블루>를 봤어요. 그 남자는 그 여자를 잃고 글을 썼어요. 치닫는 건 무서워요. 난 눈보다 더한 것도 도려낼 수 있죠. 이번 주는 은유 주간이에요. 아이들에게 은유를 집중적으로 가르치는 거죠. <일 포스티노>를 보여 줘야 겠어요. 다 쓸 데 없죠. 그 남자는 왼손잡이였어요. 광기는 사람을 조마조마하게 만들어요. 아이에게 만년필을 사줬어요. 나도 한 1년 만에 손에 펜을 잡았죠. 뭘 쓰겠다는 건 아니에요. 영화에 이런 대사가 나왔어요. “글 쓰는 거랑 벽 허무는 게 무슨 관계지?” 아이는 꿈속에서 <수학 귀신>을 만나겠다고 벼르다가 잠들었어요. 그럴려면 그러라죠 뭐. 날은 춥고 대화는 없었죠. 그 남자는 그 여자를 잃고 글을 썼어요. 그 남자는 왼손잡이였어요. 그 쓸쓸한 장면에서 문상객 명단처럼 엔딩 크레딧이 올라갔어요. 영화가 끝났죠. 인생이라고 뭐 다르겠어요. 죽을 때는 내게 와서 죽길 바래요. 담배가 피우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