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게 처음부터 셋을 낳지 말았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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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리길도 한 걸음부터
일전에 말했던 것처럼 가르쳐야 할 게 산더미 같더라도 어쩌겠는가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는 수밖에. 해서 오늘은 시험삼아 훌라와 민화투를 가르쳤다. 문제는 하수 중의 하수들하고 놀아주려니 하품이 절로 난다는 것.
문제
problem도 문제고 question도 문제고 matter도 문제고 affair도 문제다
이렇게 되면 어떤 문제가 어떤 문제인지 알 수가 없다.
해결책이 안 보인다. 문제다.
오늘의 은유
글쎄다. 잘 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잠자리에 누운 아이들 곁에 가 누우면 아이들이 이런다.
“아빠, 또 오늘의 은유 하려고 그러죠? 주제가 뭐예요?”
나는 책이니, 아침이니, 엄마 젖가슴이니 하는 주제들을 불러준다.
아이들은 알고 하는 건지 모르고 하는 건지 한 마디씩 떠든다.
나는 합격, 불합격으로 아이들의 오늘의 은유를 평가한다.
아이들의 수준은 이렇다.
“엄마 젖가슴은 찐빵이다.”
“책은 우주다.”
“백운대는 바늘이다.”
아이들을 재워 놓고 서울대 출판부에서 나온 <<은유>>를 꺼내 읽는다.
마음에 드는 구절이 있어 옮겨 적는다.
“중세기의 기독교 사회에 있어 기본적인 은유는 세상은 神이 著述한 책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어떤 책과 마찬가지로 이 책도 표면적으로 ‘말한 것’보다는 더 많은 것을 ‘뜻’할 수 있었고 또 했던 것이다.”
글쎄다. 옛날 말로 호적대장에 잉크도 안 마른 놈들을 상대로 오늘의 은유라니.
이게 뭐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혹자는 아이들 참 엽기적으로 키운다 할 지도 모르겠다.
애비가 엽기적이니 할 수 없다.
같은 책의 앞머리에 이런 구절이 있다.
“比喩言語(figurative language)란 그 언어가 서술하는 바를 의미하지 않는 언어이다.”
나는 무엇을 의미하고 싶었던 것일까.
오늘 밤에도 의미가 바람에 스치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