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 발생

1.
수영장 셔틀버스 안에서 엽이와 그 친구를 괴롭히는 녀석들이 있다는 얘기를 전해들었다. 엽이를 불러 이것저것 물어본다. 아빠가 도와주랴, 했더니 제 스스로 해결하겠단다. 이 대화를 옆에서 듣고 있던 언이가 한 마디 한다. “형아도 나처럼 분노를 발생시킬 줄 알면 되는데…….”

2.
억울하면 분하고, 분하면 화가 나니, 그 화가 분노다. 분노는 쌓이면 폭발한다. 그땐 겉잡을 수 없을 것이다.

3.
한판 붙자.

4.
너, 두고 보자.

5.
너, 대한민국 검찰한테 이른다.

6.
에이, 분하다. 술이나 마시자.

나라 법이 그런 걸

1.


영실이가 열 살이 된 어느 날이었어요.
어머니는 영실이에게 맛있는 음식과 새 옷을 주었습니다.
“어머니, 오늘이 무슨 날이에요?”
영실이는 음식을 맛있게 먹으며 물었어요.
그러자 그 때까지 아무 말도 없던 어머니가 울먹이기 시작했어요.
“영실아!”
“어머니, 왜 그러세요?”
“관기의 아들은 열 살이 되면 종이 되어 관가에 가서 살아야 한단다. 내일이 바로 그 날이야.”
영실이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어요.
“싫어요, 싫어! 어머니와 살겠어요, 어머니…….”
영실이는 어머니의 목을 끌어안고 울었습니다.
“영실아, 나라 법이 그러니 어떻게 하겠느냐? 언젠가 다시 만날 날이 있을 거야.”
영실이와 어머니는 울면서 하룻밤을 지샜습니다.
다음 날 새벽, 영실이는 길을 떠났어요.
“영실아!”
“어머니!”
영실이는 어머니 곁을 떠나기가 싫어서, 자꾸자꾸 뒤를 돌아보면서 걸어갔습니다.

─ 이준연(글), 전진프로덕션(그림), <<뽀뽀뽀 위인동산 6: 장영실>>, 한교, 1997

이 어찌 파토스 넘치는 장면이 아니리오?
예나 지금이나 나라 법은 백성이나 국민을 괴롭히는 게 주목적이었던 모양이다.
머지 않아 저들의 치하에 살게 될 터이니 나는 또 치사하게, 굴욕적으로, 내적 망명이나 준비해야겠다.

2.
굴욕하니까 생각난다. 몇 달 전에 소설가 김연수가 번역한 <<스누피의 글쓰기 완전정복>>(한문화, 2006)을 샀는데 구매이유가 시네21 서평에서 “비굴종 강아지”라는 구절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굴종하지 않는 강아지라니, 멋지군!’ 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아니었다. 책을 사서 찬찬히 살펴보니 비굴종 강아지가 아니라 “비글종 강아지”였다. 속았구나! 땅을 쳐도 소용 없고 정관수술을 해도 소용없었다. 치와와나 시베리안어쩌구라는 종자는 들어봤어도 비글이라는 종자는 처음이었다.
사후에 돈을 많이 버는 사람 1위가 엘비스 프레슬리고, 2위가 존 레넌, 3위가 찰스 M. 슐츠였다는 것 며칠 전에 TV에서 보았다는 것을 덧붙여 둔다.

3.
찰스 슐츠가 이런 말도 했다더라; “그는 살아남기 위해 공상한다. 안 그러면 지루하고 비참한 개의 삶을 살아야 하니까.”
“공상”을 멈추고 “지루하고 비참한 개[같은 나라]의 삶”을 직시해야 투사가 될 터이지만
당장 달콤하기는 공상이 달콤하다.
이를 테면 아내가 맛있는 거 사가지고 일찍 돌아오는 거.

1207

1.
온가족이 외출했다 돌아오는 길, 평소에는 소통이 원활한 길인데 차가 막힌다. 무슨 일이지? 500미터 쯤 가다보니 군인들이 바리케이트를 친 채 총부리를 겨누고 서 있다. 순간 본능적인 적개심이 든다. 저 새끼들은 뭔데 대로에서 시민을 향하여 총부리를 겨누고 서 있는 거야? 그래 그걸로 여차하면 시민들을 쏘겠다는 거야?

길이 뚫려도 마음이 못내 불편하다. 그 시대를 지나온 자의 트라우마다. 집에 돌아와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강화도에서 총기 탈취 사건이 발생해 검문중이었던 것.

2.
할 수만 있다면 그들은 그를 암살이라도 하고 싶었을 것이다.
머리 속에 암살 당한 자들의 이름이 몇 개 스친다.

3.
바야흐로 관계의 시즌이다. 아, 글쎄 내가 맺고 싶은 관계는 성관계 밖에 없다니까 그러시네들.

4.
아내 심부름으로 학원엘 갔다. 밖에 나와 한창 놀아야할 아이들이 다 어디 갔나 했더니 거기들 다 가 있었다.
생생한 사교육의 현장. 난리다. 난리. 내 자식들도 줄줄이 엮어서 들여보내야 할 저 어둡고 긴 터널.

5.
지지라는 말을 사전에서 찾아보다. 쉽게 사용할 말이 아니다.

6-1.
아들이 대기업 다닌다고 자랑하시던, 늘 무릅에 보호대를 착용하고 계시던. 삐걱거리는 관절의 누님 할머니. 사연을 듣고보니 그럴만 하다. 모래내에서 과일 장사해서 아들을 공학박사 만들었던 것.

6-2.
몇 개월 전 옆 레인의 누님 할머니에게 내가 물었다. “아니 정말로 소리하세요? 멋지시다.”
“뜨슨 밥 먹고 쉰소리할까.” 그 분의 대답이었다. 그날부터 그 누님 할머니의 별명은 명창누님이 되었다.
어제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명창누님의 친구분이 오셨길래 명창누님 얼굴 좀 뵙게 나오시라 전화해 달라고 청하였더니
나중에 사석에서 따로 보자신단다. 겁난다.

7.
겨울비다.

8.
about이 명사로도 쓰이는 경우가 있나? 사전 찾아봐야지. 전치사, 부사, 형용사, 동사는 있는데 명사는 없네. 그럼 대체 이게 무슨 뜻이지?

청춘의 문장들

김연수 (지음), <<청춘의 문장들>>, 마음산책, 2007(1판 7쇄)

이 책은 어느 소설가가 권해서 읽게 되었다. 과연 읽을만 하였으나, 나의 청춘은 애저녁에 다 지나간 까닭에─덧 없어라─”작가의 젊은 날을 사로잡은 한 문장”이 요즈음의 내 구질구질한 나날들을 사로잡아 주지는 못했다.

아울러 내 청춘을 사로잡았던 것은 당시나 하이쿠 뭐 이런 문장들이 아니라 지리멸렬했던 단어들이었다는 것을, 묻는 이는 없어도 밝혀야겠다. 예를 들면 이런 말들; 간통, 농약, 유서, 수음, 소외, ( ), ( ), ( )…

책에 이런 구절이 있었다. “나는 완전히 소진될 때까지 글을 쓸 수 있다. 이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다. 1968년 프랑스에서 학생운동이 극에 달했던 시절, 바리케이드 안쪽에 씌어진 여러 낙서 중에 ‘Ten Days of Happiness’라는 글귀가 있었다고 한다. 열흘 동안의 행복. 그 정도면 족하다. 문학을 하는 이유로도, 살아가거나 사랑하는 이유로도.”

이런 산문집 말고 그의 소설을 읽어봐야겠다. 오늘 밤에도 남의 문장이 바람에 스치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