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인의 표지

어제는 이미지가 아니라 실제로 폐인이 되어버린 사람을 만났다. 그는 소주를 박스 채 차에 싣고 다니며 마셔 댄다고 했다. 그와 절연했다는 한 사람은 자신이 몰던 차에서 그가 문을 열고 뛰어내리려 한 적이 있다고 증언했다. 그래서일까? 첫 눈에 어떤 범상치 않은 기운이 그의 몸 여기저기서 뿜어져 나오고 있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런 표지는 철거되는 건물에 삐죽삐죽 솟은 철근 같은 거니까 금방 눈에 띈다. 어쩌면 그의 몸속에 축적된 알콜이 휘발하면서 아지랑이 같은 게 피어오르고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다음에 나를 만나면 혹시 내 몸에서 아지랑이 같은 게 피어오르지는 않는지 잘 관찰해 주기 바란다. 그때까지 많이 마셔 둬야겠다. 오늘 밤에도 닭발에 소주가 스치운다.

치명적 커피

고향별 떠나온지 오래구나. 몇 억 광년이나 더 기다려야 내 그리운 별에 돌아갈 수 있나. 이런 쓸데 없는 공상하면서 모닝 커피 한 잔 마시고 있는데 노트북이 입맛을 다시길래 조금 줬더니 하 이 자식이 정신줄을 놓아버렸네. 커피가 네게 그리 치명적인 약물이었니?

희망

눈이 왔다 죽었다 살아 났다

살어리 죽으리랏다 불곡산에

살어리 죽으리랏다

눈은 오고 아내는 나가고

아이들은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오후

모탈들아 눈 온다

희망

날이 흐리고
따위가 눕는다.

바람보다 후딱 누워
바람이 다 지나가도 자빠져 있다.

교과서

오호라, 이 녀석들이 ‘매너 파일런’이라는 역설적 용어와, 사람 성질 건드리는 그 고약한 방법을 어디서 배웠나 했더니 여기서 배웠구나. 만화책이라고 생각하고 안 사주었는데 교과서라고 생각하고 사주어야겠다. 뭘? <<에쒸비>>를! 우리집에 13권까지 있는데 방금 알라딘에서 검색해보니 31권까지 나와 있다. 16권까지 일단 세 권을 장바구니에 담기는 담았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