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포비아

나이가 들수록 묻지 말아야 할 질문은 존재론적인 질문이다. 먹고 사는데 하등 도움이 안 된다. 그러나 오늘 나는 하마터면 나는 누구이며 여기는 어디이며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하고 물을 뻔했다.

오랜만에 탄 지하철 속에서 나는 명명하기 힘든 어떤 비실재감에 시달렸다. 가령, 옆자리에서 앉아서 핸드폰 너머의 누군가와 통화를 하는 사람을 보며 저 사람은 왜 자꾸 혼잣말을 하는 거지 하는 의문이 들거나, 환승통로를 걷던 사람들이 갑자기 뛰기 시작할 때 저쪽 플랫폼에 기차가 곧 도차하나보다 하는 생각보다는 어디서 무슨 일이 생겼나 사람들이 왜 뛰지 하는 생각이 들거나, 혹은 방향감각이 일순 사라져 교대 방향 플랫폼에 앉아 교대는 어느 쪽으로 가느냐고 묻는 어느 할머니의 질문에 좌우를 두리번거리게 되는 그런 순간들이 자꾸만 현전해 왔다.

그럴 때마다 나는 얼른 손에 들고 있던 책 속에 의식을 묻었다. 오늘 따라 책 속의 이야기들도 비실재적이기는 마찬가지였다. 자동차에 치인 개에 물렸던 여자가 자신의 핸드백을 날치기 하려는 강도의 팔뚝을 개처럼 물어뜯었던 이야기, 전염병이 창궐한 도시의 한 귀퉁이에서 고양이의 자궁을 적출하고 개구리를 낳고 살아가는 이상한 사람들의 이야기 등이 그랬다. <매그놀리아>의 하늘에서 ‘개구리 오는(혹은 내리는)’ 장면이 생각났다. 아스팔트에 떨어진 개구리들이 파열하는 장면이 텍스트 위에 오버랩 되었다. 끔찍했다.

그 끔찍한 시간을 온전히 견디고 지상으로 무사히 걸어 올라오며 나는 적잖이 안도했다. 이 황량하다 못해 폐허에 가까운 하늘빛이 다 반가웠다.

—–
따위 :: ”
이런 날이면
건물 옥상에서 투신자살하는 소년이
엄마가 쏜 총을 맞아 죽는 영화를 보고 싶지
몇 번이고 보고 싶지 그러면 소년은 몇 번이고 죽는 거지
소년은 이미 죽었으니까 아프지 않은데
맥주를 사러 나서게 되는 거지

이현승, ‘하루키를 읽는 오후’ 중에서

우연인가. 이 시도 ‘매그놀리아’ 얘기군. 2004/01/28

따위 :: 사족처럼 딱 한 마디만 더 하자면, 하루키의 최근작 ‘해변의 카프카’에는 하늘에서 거머리가 비처럼 혹은 우박처럼 쏟아지는 내용이 나온다. 2004/01/29

따위 :: 또 고양이 말을 할 줄 아는 재미있는 노인(나카타)은 이런 식이다. 아래 나오는 고양이는 좀 모자라는 고양이라 말이 안통하긴 하지만…

“그런데 이 나카타가 당신을 가와무라 상이라고 불러도 괜찮으시겠습니까?” 나카타 상은 그 갈색 줄무늬 고양이에게 또 한 번 똑같은 질문을 했다. 천천히 말을 끊어가며 되도록 알아듣기 쉬운 목소리로.
그 고양이는 자기가 이 부근에서 고마(한 살, 얼룩 고양이, 암컷)의 모습을 본 적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런데 고양이는 ─ 나카타 상의 입장에서 본다면, 하는 전제가 붙지만 ─ 말투가 꽤 기묘했다. 고양이 쪽도 나카타 상의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 때문에 그들의 대화는 때때로 엇갈려서, 말이 잘 통하지 않았다.
“괜찮기는 하지만, 높은 머리.”
“미안합니다. 말씀하시는 걸 나카타는 잘 모르겠습니다. 죄송하지만 나카타는 머리가 그다지 좋지 않습니다.”
“어디까지나 고등어에 관한 것.”
“혹시 고등어를 드시고 싶으십니까?”
“틀렸어. 앞의 손이, 묶는다.” 도무지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다.

<해변의 카프카> 上권 p149-150 2004/01/2

Posted in 블루 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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