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보복하면 웃긴다

지금 누가 나를 공격하고 있다. 지금 누가 내 존재를 뼛속깊이 건드리고 있다. 지금 누가 내 존재를 깊이 건드리는 발언을 하고 있다. 지금 누가 나를 아주 우스운 꼴을 만들고 있다. 내가 그의 공격을 받아 내 심장에 울그락불그락 단풍들어 가고 있는 동안에, 내 모습을 보면서 관객들이 즐거워하고 있다. 폭소가 터지고 있다. 아, 의식이 가물가물하고 아, 속이 터질라구 그런다. 그러나 이럴 때 일수록 정신을 바싹 차리지 않으면 안 된다. 22세기 서양 속담에 호랭이한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된다고 했다.

때는 80년대 중반 장소는 어느 고등학교 교실.
별명이 ‘야마모토’인 학생이 있었다. 22세기 서양 속담에 별명은 생긴 걸 따라 간다고 했다. ‘야마모토’는 생긴 것도, 하고 다니는 스타일도 머리를 올백으로 넘긴 게 꼭 귀신 씨나락 까먹은 ‘made in japan’하고 비슷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느 선생님의 탈을 쓴 선생님의 어느 수업시간에 ‘야마모토’가 드디어 진짜 오리지날 일본 놈으로 몰렸다. 와, 큰일 났다. 오리지날 일본놈이라니!. 이거 정말 존재를 엄청나게 건드리는 발언이었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크롱마뇽마뇽인으로 몰린 것보다 더 분개한 이 학생, ‘나는 일본 놈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선생님의 탈을 쓴 선생님이 “야, 우리나라 역사를 봐라. 네가 순수혈통을 아무리 주장해도 임진왜란도 있고……. 아무튼 넌 일본 놈이 맞다.” 하셨다. 그러자 이 학생, 이렇게 말했다.

“그럼 선생님은 병자호란?”

우와! 하고 폭소가 터졌다. 성공적인 보복을 마친 이 학생이 어떻게 되었을 것 같은가?
아주 많이 두들겨 맞지는 않았단다.

(이 얘기는 거시기님이 따위에게 해준 것, 혹시 야마모토가 거시기님?)

다른 예를 들어 보겠다.

일본의 외무장관을 지낸 이누가이는 한쪽 눈이 없는 사람이었다. 어느 날 국회에서 국제정세를 설명하는 그에게 한 야당의원이 “당신은 한쪽 눈밖에 없는데 복잡한 국제정세를 잘도 보시는군요”라고 빈정거렸다. 이런 노골적인 인신공격에 대해 이누가이는 태연하게 대꾸했다. “의원께서는 ‘일목요연(一目瞭然)하다’는 말도 못 들어보셨습니까?”

//신동아, 2001년 4월호 <유머가 경쟁력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공격을 당하면 보복하라. 단, 재치 있게 보복하라. 물론 누구나 공격을 당하면 재치 있게 보복을 하고 싶어 한다. 문제는 재치 있게 보복을 어떻게 하는 지를 잘 모른다는 데 있다. 재치 있게 보복하라는 말은 엄청 쉽지만, 실제로 보복하기는 어려울 수도 있다.

물론, 보복이 끝까지 여의치 않을 때가 있다. 이때 써먹을 수 있는 최후의 방법이 있다. 그건 정색을 하고 묻는 것이다. ‘그게 무슨 뜻이죠?’하고. 물론, 이번에도 혹시나 역시나, 문맥에 맞는 적절한 인용은 아니지만, 그러니까 부적절한 관계 같은 부적절한 인용이지만, 이게 다 웃자고 하는 거니까 따지지 말고, 비트겐슈타인의 일화를 보자.

1925년 8월 존 메이나드 케인스와 새로 결혼한 아내 리디아 로포코바는 서섹스로 2주일간의 신혼여행을 떠났다. 신혼여행 중 비트겐슈타인이 잠깐 방문했다. 케인스의 전기를 쓴 로버트 스키델스키는 다음과 같은 일화를 전하고 있다. “리디아는 밝은 표정으로 비트겐슈타인에게 말했다. ‘참 아름다운 나무예요.’ 그러자 비트겐슈타인이 그녀를 쏘아보았다. ‘그게 무슨 말이죠?’리디아는 울음을 터뜨렸다.” 케인스는 비트겐슈타인의 여행 경비를 지불함으로써 모욕 받은 신부의 기분을 더 망가뜨렸다. 그러나 그런 일을 당한 사람은 리디아뿐만이 아니었다. 비트겐슈타인이 미국에서 돌아온 직후 예전에 자신을 치료한 의사의 아내 존 비번을 만났다. “미국에 가보셨으니 참 행복하신 분이군요”라는 그녀의 인사에 대해 비트겐슈타인은 이렇게 대꾸했다고 한다. “행복하다는 말씀은 무슨 뜻으로 하신 겁니까?”
이것은 단순히 서투른 스타일이나 매너의 문제가 아니었다. 비트겐슈타인은 공손한 대화나 사교적 한담과 전혀 무관한 사람이었다. 명료한 의미, 그것이 그에게는 전부였고, 그는 어떤 문제에 대해서든지 항상 명료성을 향해 곧장 나아갔다.

─ 데이비드 에드먼즈, 존 에이디노 지음 / 김태환 옮김, <비트겐슈타인은 왜?>, 웅진닷컴 223~224쪽

상대방의 공격에 대해서 무슨 뜻이냐고 반문을 하는 것이 왜 공격에 대한 보복이 될 수 있느냐 하면 당연히 무슨 뜻인지 알고 있는 말해 대해서 모르는 척, 천연덕스럽게 반문을 하는 것 자체가 구경꾼들에게는 또 하나의 재미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공격하면 웃긴다>편에서 김제동의 ‘왜 몰라요? 난 딱 보니까 알겠는데…’하는 공격을 받은 여자가 만약에 “딱 보니까 알겠다니, 그게 무슨 뜻이죠?” 라고 물어 보았다면 김제동의 반응은 어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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