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낮에 광교산 자락 어느 식당에서 열린 모종의 모임에 참석을 했는데 좌장격인 사람이 시종일관 남의 말은 듣지도 않고 자기 얘기만 장황하게 떠들어 대는 바람에 기분이 몹시 언짢았다. 이건 뭐 유치원생도 아니고 다른 사람이 하는 말에 들어 있는 단어에만─그 사람이 말하는 내용이 아니라─반응하면서 상대방 말을 자르고 제 입만 놀려대니 대화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금쪽 같은 시간을 쪼개 비싼 기름 써 가며 천리길을 운전하고 왔는데 연장자에 대한 예우상 묵묵히 듣고만 있자니 속에서는 열불이 났다.
내 경멸을 눈치 챈 것일까? 모임을 파하느라 주차장에서 서성거리는 자리에서 그는 새삼스럽게 악수를 청하며 자기가 말이 너무 많았다고 말했다. 이크, 끝까지 거리를 두었어야 했는데 방심하다가 당했다. 아닙니다, 말씀 잘 들었습니다,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나는 의례적인 멘트를 쳤다. 우웩, 내 멘트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오리다.
면전에서 표나지 않게 사람을 경멸하려면 잠자코 앉아 있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즐겁다는 표정을 지으며 상대방의 말에 간간히 추임새도 넣어주어야 하는 것이다. 다들 그렇게 만난다. 겉과 속이 다르게.
그 좌장이 아무래도 술 취한 모양 아닌가 합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