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 시절에는 잠자리에 누우면 천장이 ‘당구다이’로 보였고, 밥상 앞에 앉으면 밥상이 ‘당구다이’로 보였다. 세상은 당구대를 닮은 네모와 당구공을 닮은 동그라미로만 이루어져 있었다. 그렇게 해서 머리 속으로 구사하는 구력은 어느 틈에 300을 훌쩍 넘어 있었지만, 막상 큐대를 잡으면 난 고작 50일 뿐이었다.
3수를 하고 대학에 들어온 한 친구는 진짜 300이었고, 난 녀석에게 ‘지도대국’을 부탁하곤 했다. 녀석은 마지 못해 응한 다음 건성건성 큐질을 해댔고, 난 한 큐 한 큐 온 정성을 다했지만 처음부터 ‘째비’가 안되는 게임이었다. 게임에 져서 마음 상하고, 당구비 물어 현찰 아까운 시절이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흐르고 차츰 ‘다마수’가 올라가면서 천장은 다시 온전한 천장이 되고 밥상은 다시 제대로 된 밥상이 되었다. 그제서야 나는, 세상에는 ‘네모’와 ‘동그라미’ 말고 ‘삼각형’도 있고 ‘별’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2.
드디어 누나의 뒤를 이어 ‘엽’이도 컴퓨터 중독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깡패 누나’가 마침내 잠들자 ‘엽’이는 저 혼자 컴퓨터를 독차지한 게 아무래도 뿌듯한 모양이다. 녀석은 ‘쪼끔만 더. 아빠, 아주 쪼끔만 더’를 해대다가 12시를 넘겨서야 겨우 잠이 들었다.
아마 이 녀석도 이제부터 머리 속으로 하루종일 컴퓨팅을 할지도 모르겠다. 컴퓨터를 처음 배우던 시절에 cd .., a:, del *.*, format a:, sys a:, cp ddawee.hwp a:\molla\ddawee.hwp 등등 MS-DOS의 명령어들이 내 머리속에서 달그락거렸듯이 말이다. 혹은, 바로, 지금, ‘엽’이의 잠든 머리 속에서 마우스 커서가 바삐움직이며 한 세계를 부지런히 클릭하고 있을런지도…
저는 그것이 테트리스였읍지요…
주차장에서 차를 보면 이렇게 돌리고 저렇게 돌리는 상상…
딴 얘기지만,
아이들은 마우스로 그림판에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한답니다.
따위의 중독 목록:
테트리스 다음에는 헥사가 있었지요. 가로로 세로로 대각선으로 무늬가 맞아서 모니터 한 가득 차올랐던 형형색색의 조각들이 와르르 붕괴할 때의 쾌감도 짜릿했었다는
그 보다 훨씬 오래 전에 갤러그가 있었고, 아, 또 ‘큐브’라고 아시는지요? 머리 속에서 하루 온종일 꿈 속에서도 큐브 조각들이 이리 저리 돌았다는
제 개인 최고기록 16초! 친구들에게는 거의 ‘큐브의 지존’으로 통했었다는
그러나 뭐니 뭐니해도 가장 강력한 건 역시 춘화! 이건 설명이 필요없다는
아, 마우스로 그림판에 그림그리는 놀이가 있다는 건 당분간 ‘우’와 ‘엽’에게 비밀로 해주시죠^^;
갤러그가 원단이었네요 생각을 해보니…
그 멋진 음악과 스테이지 바뀔 때 나오는 표과음이란…
하지만 저의 주 종목은 지뢰찾기였슴다
초보자용 6초, 중급자용 34초, 전문가용 93초
ㅎㅎ
어떤 잡기에 중독되는 것보다 연애에 중독되는 것이…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섭다는…
그런데…뭐….
잡기 중독사를 밝히는 분위기니…
10대: 당구 —-> 20대: 바둑 > 30대: 스타크래프트
이렇게 3대 잡기가 내 청춘의 참으로 많은 시간을 잡아 먹었다는…
지뢰찾기, 테트리스 등은 그 중독의 강도와 지속시간에 있어서…
저 3대 잡기천왕들과 쨉이 안된다는…
40대에는 또 어떤 잡기가 나를 사로잡을 것인지 궁금하오…
사진이 날로 느는 것 같으오…순간을 포착하는 솜씨가 나날이…일취월장하고 있다오…애셋을 이쁜 사진집으로 내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1.
결혼 전 어느날 이었습니다. 아마 그날은 거기시님도 안 놀아주고 해서 집에 일찍 들어갔드랬습니다. 집에 가니 저녁 7시 쯤이었습니다. 어머니가 제 방에서 지뢰를 찾고 계셨습니다. 그 육중한 486 컴퓨터가 제 방 말고 어디 있었겠습니까?
“어휴, 하나만 맞추면 되는데…, 이건가…, 에잇 또 틀렸다.” 뭐 이렇게 중얼거리시면서 말입니다. 막내 아들 저녁밥 줄 생각도 안하시더군요. 그래 밥달라, 했더니 니가 차려 먹어라, 하시더군요. 해서 혼자 밥 차려 먹었습니다. 저녁 먹고 뉴스 보고 또 무슨 미니시리즈 보고 할 동안에도 어머니는 계속해서 지뢰를 찾고 있었드랬습니다. 밤 열한시쯤이 되었습니다. 안 주무세요, 했더니 너 먼저 자라, 하시더군요. 그래 먼저 잠을 청했습니다. 그런다고 쉽게 잠이 왔겠습니까?
그래 지뢰찾기 하시는 어머니 옆에서 책을 읽었지요. 어머니는 옆에서 계속 “이건가, 어휴, 아니네, 딱 한번만 더해야지” 이러시더군요. 결국 새벽2시까지 지뢰를 찾으시다가 입맛을 다시시며 나가셨다는… 다음날 아침부터 또 지뢰를 찾으셨다는 …
2.
초보자용 6초, 중급자용 34초, 전문가용 93초
저 정도면 상당한 수준급이 기록이었네요. 정확한 파일이름은 기억나지 않으나 아마 winmine.ini 뭐 이런 파일을 텍스트편집기로 열어보면 최고기록을 임으로 바꾸어 놓을 수 있었습니다. 누가 최고기록을 세웠다고 자랑을 하면, 저는 몰래 저 파일을 열어 그 최고기록보다 꼭 1초만 빠르게 해놓고 제 이름을 입력시켜 놓았었다는… 그때 제 속임수에 당한 사람이 아직도 이 따위넷에 드나든다는…
3. 고스톱
‘육백’이라는 게임이 있습니다. 화투놀이의 일종인데 ‘약’을 형성하는 방식이 일반 화투와는 달랐지요. 어린 마음에 가장 인상 깊었던 룰은 비光이었습니다. 그걸로는 아무 알맹이나 먹을 수 있었습니다. 가령, 누가 비光으로 초 10끝짜리를 먹으면 게임이 종료되고 난 뒤에는 초껍데기 하나와 비한장(비광을 제외한 셋중의 하나)가 남았었습니다. 그게 참 이상했었지요.
아무튼 고삐리(…하니까 문득 감동의 물결이) 때 친구집에 놀러가 그때까지 고스톱을 모르던 친구녀석에게 고스톱을 가르쳐주었었습니다. 문득 장난기가 발동하여 ‘비光’으로는 아무 알맹이나 먹을 수 있다는 룰이 있다고 사기를 쳤었지요. 이런 규칙을 ‘비깡패’라고 불렀었던 것 같습니다.
아직도 망년회 같는 데서 당시 친구들 만나면 ‘비깡패’ 운운하면서 추억에 젖는다는…
4.
거시기님/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사진 얘기는 다음에 하겠다는…
1. 어머님의 지뢰
그날도 어김없이 저는 따위님과 술을 마셨지요…또 어김없이 따위님을 따라서 따위님 집으로 갔지요…근데 따위님과 함께 방에 들어가는데…아들이 들어온 줄도 모르고 지뢰를 찾으시던 내복 바람의 어머님….손님이 오시니 영 무안해서 어쩔 줄 몰라 하시던…그 연세에 지뢰찾기에 재미 붙이시는 분은 아마 대한민국에서 손을 꼽으리라 보입니다…60세 이상 지뢰찾기 대회 하면 우승도 거뜬히 하셨을텐데…따위님의 잡기 관련 잔머리는 어머님께서 물려주신 것이 분명한 것으로 보입니다…
2. 내가 당한 ‘그놈’이오
나 지뢰찾기 좀 한다고….따위님 책상에 있는 컴에 가서 백몇십초대의 기록을 세워놓곤 했지요…그런데 며칠 뒤에 가보면 딱 1초 차로 기록이 경신되어 있는게 아닌가? 아무리 보아도…그쪽 잔머리는 나에게 뒤지는 것으로 보이는 따위이기에…오기가 발동하여…몇번 기록 갈아치우기를 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그렇게 몇번을 당한 뒤에야…사실을 실토하는 따위…정말이지…얍삽한 따위보다는 dir 밖에 모르는 컴맹인 내 자신이 미웠을 따름이지요…
조금 전에 집에 오니 엽이가 날 보면서 소리를 쳤다.
“야, 컴퓨터 왔다!”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