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오후, 영화가 한창 클라이막스를 향해 치달아가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동생들 데리고 놀러나간 딸이다.
여보세요?
아빠.
왜?
응, 우리 지금 끝말잇기 하는데 ‘늘보’라는 단어가 있어?
몰라.
에이.
그냥 취소하고 처음부터 다시 해.
안 돼. 우리 지금 아이스크림 내기했단 말야.
오우, 그래? 알았어. 전화해 줄게. 기다려.
보던 영화 멈춰 놓고 사전을 찾는다. 있다. 늘보. 명사. 느림보의 준말. 전화 건다.
어, 나우야. 찾아보니 있다. 느림보의 준말이란다.
얏호.
끊어.
야, 있대. 있대. (fade out)
있든지 말든지, 나는 보던 영화나 마저 본다. 배트맨 신세 참 처량하게 됐군. 레이첼에게 버림 받고, 레이첼은 죽고, 지가 버림받은 줄도 모르고, 쿨한 척 스스로 누명 쓰고……
그런데 아이언맨하고 배트맨하고 싸우면 누가 이길까?
p.s.
현장에 있다가 방금 귀가한 막내에 의하면 아직도 그 단어가 있다 없다 하면서 티격태격하고 있다고 한다.